작품 소개
나는 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 상상 속에서 언제나 그에게 나쁜 몸짓을 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지만 이성적인 부끄러움 따윈 없다. 닿을 듯 말 듯 간질이는 거친 숨결, 온 세포를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눈빛, 그리고 젖은 공기처럼 끈적거리는 땀방울들……. 오늘도 나는 여지없이 꼼짝도 할 수 없는 탐닉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본문 중에서 두 사람 앞의 술잔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졌다.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을 무렵 그가 잔을 들어 술 한 모금을 먹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용건을 말해 볼까?” 진중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 꽃 말이에요.” “이거?” 그가 카네이션 다발을 살짝 들었다 놓았다. “교수님에게 드리는 제 마지막 예의에요.” “마지막 예의?” “네.” “무슨 의미일까?” “이젠 절대 교수님이 아니니까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드디어 십년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짝사랑을 꺼내놓는 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 긴 세월동안 몇 천 번이고 되뇌었던 말인데 왜 이렇게 머뭇거리게 되는 것일까? ‘고은수, 도망가지 마. 지금이라고!’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물음표가 묻어났다. “송민준 씨, 저랑 연애할래요? 아니, 연애해요.” 고백을 하자마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말을 더듬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것일 터였다. 그러나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침묵, 그것도 굉장히 무거운 침묵이었다. 더구나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불편하고 어색한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연애라…….” 너무 검고 깊어 오히려 무채색 같았던 그의 눈동자에 아주 잠깐이지만 빛이 돌았다. 약간의 한숨과 더불어 독백처럼 내뱉은 말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영락없는 거절의 의미처럼 느껴졌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너하고 나하고?” 무슨 뜻일까? 설마 고백자체가 어이없다는 의미일까? 열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그에겐 큰 걸림돌인 걸까?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또다시 두 사람 사이로 내려앉았다.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얼어붙은 그녀 대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손잡고 영화관 가고, 맛있는 맛 집 찾아다니는 그런 연애?”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혹시 아직 그에겐 그녀는 옆집 꼬마 소녀라는 뜻일까? 여전히 무표정과 고조도 없는 목소리로 일관하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순간 후회란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대답이 왜 예스 아니면 노가 아니지?’ 그녀는 정말 바보였다. 그가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어쩌면 그녀가 십년이나 간직했던 첫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은, 그에겐 십년이나 알았던 옆집 동생이 연애를 하자고 덤비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난처하다는 의미일까?’ 당황스러워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얼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물러날 순 없었다. 거절을 당하더라도 몇 번이고 또 고백을 하리라고 다짐에 다짐을 더하지 않았는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려던 그녀는 갑자기 얼마 전 난주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왜 그런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대답을 하려던 그녀를 멈추게 만들었다. 난주는 그녀에게 늘 충고를 했다. 십 년 전에 만났던 중학생 소녀를 아무리 성인이 되어 만났다고는 하나 절대 여자로 느껴지진 않을 거라고, 만약 자신이었다면 그랬을 것 같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교복을 입었던 중학생 때에 만났던 것이 절대적으로 핸디캡이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지금 그의 얼굴을 보며 그가 하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난주의 말이 정확히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그의 사이엔 얇지만 절대 뚫릴 수 없는 막이 쳐있는 느낌이라 언짢았다. 일순 오기가 바짝 솟아올랐다. 더더군다나 조금 전 학교에서 본 이정아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제야 그녀는 혼란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깔끔이 정리가 되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난리가 났다. 바르르, 손끝도 환자처럼 떨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며 입을 달싹였다. “아뇨. 키스 하고, 섹스 하는 거.”
작품 정보
〈나쁜 몸짓〉은 세라니아 작가의 로맨스 웹소설이다.
미스터블루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며 출판사는 로망띠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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