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소설
완결
로맨스판타지

홍야개화담

리뷰 쓰기
연재처

작품 소개

"내가 귀문관살이라고?" 섬섬옥수 기다랗고 고운 손가락들이 내 티셔츠 안으로 파고 들어 긴장감에 납작해진 복부를 쓸며 물었다. 놈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금방이라도 내 귀를 베어물듯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따끈한 숨결이 곧 축축하게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래. 네 놈이 귀문관살이란다. 귀.문.관.살 그래서 내가 사자받이로 대신 왔잖니. 니 옆이 이리 떡 하니 누워 있잖니. 귀신 귀鬼 문 문門 빗장 관關 귀신이 들어와 문의 빗장을 잠근다 라는 뜻으로 즉,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 열려 있는 살을 일컫는 말인 귀문관살. 녀석은 자신과 동침에 들기 전 병원에서 탄 수면제 두알을 먹고 간신히 잠이드려는 날 억척스레 깨워선 내 몸을 품 안에 껴안으며 어깨팍에 고개를 묻은 체 의아한 듯 몇번이도 귀문관살에 대해 되물었다. 마치 이해하기 힘든 듯. 자기 자신의 영혼까지 흡수해버린 악한 사자에 의해 곧 죽거나, 아니면 남을 해하는 운명이라는게 영 믿기 힘들다는 듯. "그래서 내가 이 꼬라지로 사는 거라고?" 꽈악.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어깨와 팔의 뼈대를 뭉게 버리겠단 심산으로 내 몸을 꽉 끌어 안는 녀석 때문에 온 몸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지킬앤하이드와 같은 녀석의 이중적인 모습에 괜히 자극을 주지 않으려 나는 녀석의 거친 포옹에도 아무말 없이 잠을 청하려 억지로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하지만, 티셔츠 안, 쉼 없이 움직이는 녀석의 손. 그 축축한 뱀 비늘마냥 느껴지는 녀석의 손길에 꾹 눌러 참아 왔던 한 마디를 드디어 터뜨린 나다. "죄송한데요. 안 졸리세요?" "응." "그럼 이 손 좀 치워 주실래요? 전 자야 하거든요. 내일 굿이 있어요." 나는 내 복부를 부드럽게 쓸다 이내 말캉한 뱃살을 움켜쥐는 녀석의 손을 덥석 잡아 뿌리치며 작게 소리쳤다. 물론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고모가 신신당부한대로. 사자가 들어가 빗장을 잠궈버린 두 눈은 절대로 쳐다봐선 안 된다는 고모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 . . "넋대신. 넋대신 아니시리. 고혼 진혼 넋 다 쓸어 극락의 꽃길 모시는 넋대신이 아니시리-!" 하얀 고깔을 쓴 할머니가 방울을 흔들며 쇳소리 가득한 음성으로 크게 외치자, 값비싼 시계를 찬 중년 여성의 비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우리 최씨 기주님, 타살로 억욱하게 죽은 청춘 귀, 내 잘 받아 모셔 극락으로 보내드리오리다. 그러니 걱정마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딱 봐도, 부티가 흐르는 귀부인 분위기의 여성이 할머니가 가까이 다가와 부채 방울을 흔들며 몇마디를 내뱉자 이에 감복이라도 한듯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조아렸다. 곧 이어 할머니가 길고 팽팽한 하얀 무명천 사이를 가르며 곡소리를 흥얼거렸다. 이에, 중년 여성이 결국 굿당 흙바닥 위에 엎어져 두 손으로 흙바닥을 치며 통곡했고, 그녀 옆을 지키던 젊은 기사가 조금은 초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하얀 무명 천 위, '신유생 박 승훈 영가 극락왕생발원' 이라고 적힌 한지를 수십장의 오만원짜리 지폐가 뒤덮는다. "기랑아-! 쌀이랑 막걸리 뿌려라!" "승훈아...승훈아.." 여성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자신의 아들 이름을 연신 부르며 퉁퉁 부은 두 눈으로 갈라지는 무명 천 끝 활활 타오르는 한지를 바라본다. . . . "오매, 이게 얼마여?" 할머니의 신딸인 기랑이모가 입을 허- 벌리며 말했다. 이윽고 할머니 앞 고무줄이 끈어질듯 팽팽하게 묶은 돈 다발이 다시금 다른 이의 손에서 쏟아지는걸 바라보더니 두 손으로 벌린 입을 틀어막았다. "박일순한테 굿하려믄 이 정도는 되야제. 이게 뭐시라고. 이 종이조각 이거이거." 칠십도 훌쩍 넘은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굿이 파한 뒤 어수선한 굿 당 안에 울려퍼졌다. 이에 피리와 장구를 가방 안에 집어 넣느라 분주한 악사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뒤이어 울려퍼졌다. 대한민국 나라 만신 박 일순. 재벌가들의 또 다른 종교 박 일순. 우리 친 할머니 이름 앞으로 붙는 수식어들이다. 할머니는 20대 초반, 아빠를 낳고 나서 바로 신을 받아 여지껏 무당으로서의 삶을 살아 오셨다. 그리고 당신이 무당이라는것에 엄청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계셨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당시, 진행하고 있던 나라 굿을 무르지 않고 온전히 다 마치신 후에 병원으로 이동하셨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않은가. 할머니는 무당으로서의 삶에 ,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 하고 계셨다. '지 애미가 무당인데, 지옥가는 자손이 어디 있을꼬. 그러믄 이 짓거리 안하제.' 아빠 영정 사진을 무심히 바라보던 할머니가 머리 위 무명리본을 슥 매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날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이윽고 날 껴안았다 살포시 떨어지는 주름진 얼굴 아래 내 어깨팍에 물든 붉은 핏방울을 보고서야 난 깨달았다. 할머니가 눈물을 참으려 꾹 깨문 아랫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하얀 소복으로 훔치시며 코를 훌쩍이셨다. 그렇다. 사실 우리 중, 할머니가 제일 슬퍼하고 계실 거란 걸. 할머니의 슬픔이 제일 크고 고통스러웠다. 지 자식 죽어도 굿판 뛰는 년 불리러 온건 신이 아니라 악귀라고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붓는 다른 무당들의 치기어린 눈길에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던 할머니는 어쩌면, 어린 우리들이 무너질까 강한 척, 초연한 척 하고 계시던 것 뿐이었다. 어찌됐던 장례식 장 안에서 할머니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몸져 누운 부모의 입장에 선 약자이자, 세상에서 제일 가여운 사람이었다. 두 눈에서 흐를 눈물 대신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 모습에 난 아무런 화도 낼 수 없었다. 너무 슬퍼보였다. 너무나. "야, 이 놈 손아. 뭐 허냐. 이 돈 다발 다 갖고가지 않고." "뭐래, 할매 돈이지 내 돈이야?" 한참을 옛 생각에 빠져 할머니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버럭 소리지르며 내 눈 앞으로 시크하게 돈 뭉치를 내던지는 할머니 행동에 픽 웃음을 터뜨리며 흩어진 돈을 끌어 모으면서 대답했다. "그려. 나 죽으면 이게 다 니 돈이지." "..크흠.." 기랑이모가 작게 헛기침을 한다. "내 무구도, 내 신당도, 그리고 이 모든 신들도 다 너한테로 고개를 돌리지 이 것아." 으- 제일 듣기 싫은 말. 할머니 말이 끝나자마자 굿당 벽에 다닥다닥 붙여진 탱화 속 신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다 나를 향하는 것 같은 기분에 괜스레 으스스해진 나는 몸서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년이여. 내년에는 작두 오르는거여." "말했어 할매. 난 신 안 받어." "이게 또 할매 뒷목 잡는 소리하고 있네. 너도 네 부모 따라 황천길 가고 싶어 그러냐?" "뭐래. 극락갔다며? 그럼 좋은거 아니야?" "저저저, 저 요망한 년 말 하는 것 보소. 아이고. 아이고." 굿당 밖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더니 기어이 뒷 목을 잡고 기랑 이모 품에 쓰러지는 할머니. 그러던가말던가. 난 곧 죽어도 신은 받지 않을 것이다. 저 소름돋을 정도로 시끄러운 방울과, 회오리바람보다 더 거친 저 부채 또한 손에 쥐지 않을 것이다. 절대. . . . "할머니 마지막 유언이잖니." 4월. 봄 꽃이 만연한 그 날, 비단 이불을 가슴팍 까지 끌어 올려 반듯한 자세로 천장을 향해 누은 할머니를 내려다보던 고모가 붉게 충혈 된 눈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나를 향해 말했다. 목 끝까지 솟아오르는 슬픔에 차가운 할머니의 손등에 파묻혀진 얼굴 위로 울리는 고모 말에 아무 대답없이 나는 그저 고개만 힘들게 주억거렸다. "잘 생각했다. 고맙다. 천우야. 고마워." 내 등을 쓸던 고모 또한 결국 내 등어리에 고개를 파묻고 오열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할머니가 굿당에서 매번 예언한대로 따듯한 난춘에 잠든 듯 편안히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 토록 싫어했던 부채 방울 두 손에 들고 할머니가 생 전에 쓰셨던 작두 날에 올라섰다. "어떤 분이 오셨습니까?" 하늘 위로 높게 뻗은 오색천을 바라보자 쨍- 하니 파란 하늘 아래로 미친듯 쏟아지는 기괴한 형상들에 난 눈을 감고 싶었다. "어떤 분이십니까?" 그렇게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두 눈을 찔끔 감은 나를 다독이듯 처마바람의 내 몸을 쓸어내리는 고모의 손길에 나는 다시 힘을 입어 두 눈을 번뜩 뜬다. 휘-리릭. 쏴-아. 비단의 옷을 걸친 새하얀 여자가 치마를 펄럭이며 두 팔을 벌려 내게로 쏟아지듯 내려온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환영과 함께 물컹하면서도 엄청난 공기가 내 명치를 뚫고 들어오고. "사자, 사자받이 하려 왔소-!"

작품 정보

〈홍야개화담〉은 JAEHEE 작가의 로맨스판타지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5년 5월 26일이다.2026년 10월 17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20화다.

리뷰

아직 리뷰가 없어요

첫 리뷰 쓰기

함께 볼 만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