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남들은 죽기 전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는데, 범록은 딱히 떠오르는 일도,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 잘 먹고 잘살 거라는 생각을 하면 무덤에서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여기서 죽으면 씨발, 원귀가 돼서라도 복수할 테다. 반드시.’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예쁘고 똘망똘망하게 생긴 남자애를 발견했다. 애초에 천국에 갈 만큼 착하게 살지 않았음에도 하얗게 빛나는 소년의 얼굴을 보자 그런 의문이 들었다. 혹시 여기가 천국은 아닐까 하는. “어? 어디 가시게요? 어어, 아직 일어나면 안 되는데.” “너 여기 살아? 이름이…. 정해율?” “제, 제 이름 어떻게 아셨어요?” “명찰.” “아아. 맞다.” 무슨 점쟁이라도 만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던 해율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교복 명찰을 쓸어내렸다. 가정교육을 그렇게 받은 건지 그냥 습관인지 모르겠으나 소년은 움직임이 사붓사붓하고 섬세했다. 그래서인지 범록의 눈엔 아이가 신기했다. 자신의 주변엔 목소리가 크고 아무렇게나 먹고 싸고 자는 덩치들밖에 없어서 해율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물론 자신 또한 소년과는 상당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 그 차이를 더 크게 체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해율을 볼 때마다 그저 신기하고 재밌다고만 생각했는데... - “형은 비 오는 날 좋아해요?” “글쎄.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이지.” “왜요?” “좋은 기억이 없으니까.” 딱히 좋고 싫고를 따져본 적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형과 함께 보육원에 버려지던 날에도, 자신이 칼에 찔렸을 때도 비가 왔었다.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해율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그럼, 오늘은요?” “오늘?” “저는 이제 소나기가 내리면 형이 생각날 것 같거든요. 오늘도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에요?” 그렇게 묻는 해율은 어딘가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범록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청보리밭 사이로 시선을 던지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마등에서 볼 것 같은 풍경이지. 오늘은.” “… 네? 주, 주마등이요? 그거 죽기 전에 막 보이고 그런 거 아녜요?” “맞아.”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그만큼 끔찍한 악몽이라는 뜻인가. 해율이 혼란스러워하는 동안에도 범록은 혼자 킥킥댔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던 내게 그만큼 선명하게 새겨진 추억이 되었다고 하면 너는 뭐라고 할까. 범록은 끝내 해율에게 그 말의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작품 정보
〈천국은 언제나 여름이었다〉는 솔래온 작가의 BL 웹소설이다.
리디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며 출판사는 이젤 BL이다.
평점은 리디 4.7점(3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