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BL #고전물 [韓] 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옷자락을 휘날렸다. 묘안산과 바로 이어져 있는 이 언덕에선 비령궁이 아주 잘 내려다 보였다. 민혁은 등에 봇짐을 가득 진채 차가운 눈으로 비령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령성 안에선 익숙한 인영이 민혁과 마찬가지로 봇짐을 지고 말에 올라탄 채 배웅 받고 있었다. 혜성을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혜성이 현국으로 가던 금국으로 가던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무언가 신경 쓰이는 마음에 언덕을 올랐다. 멀리서 혜성을 스친 바람이 이윽고 민혁에게로 불어왔다. 날씨는 이미 많이 따뜻해져 만물이 깨어나고 온 곳에 봄 내음이 가득했지만, 민혁과 혜성의 관계는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뼛속부터 무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민혁이 앞으로도 머물러 있을 곳은 바로 전쟁터였다. 자신과 여린 저 아이와는 본질부터가 달랐다. 그럼에도 둘은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고, 오랜 시간 같이 지낸 것은 아니지만 몇 년을 함께한 듯 둘도 없는 벗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이걸로 끝이었다. 민혁은 더 이상 혜성과 엮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들은 이미 한번 만난 인연이었고, 이제 떨어져서 앞으로 자기만의 길을 갈 것이었다. 한참을 언덕위에 서서 비령궁을 내려다보고 있던 민혁은 뒤를 돌았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봇짐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자신 역시 오늘 먼 여정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두컴컴하고 외로운 길을... -얼마의 시간이 지난다 해도, 난 너를 용서할 수 없다. 허니,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尹] 먼 길을 떠나는 것 치고 혜성의 짐은 간소했다. 혜성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말에 다가갔다. 그의 뒤에는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가족들이 있었다. 말에 올라타기 전 혜성은 잠시 뒤를 돌았다. 자신의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혜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 역시 자신에게 그리 애정을 주셨던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무송이 그렇게 된 후 혜성은 삶에 의미를 두지 못했다.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유일하게 가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정 길에 오르려 하는 것이었다. 혜원의 눈은 붉었다. 기실 사건 이래로 혜원의 눈가가 붉지 않았던 때를 세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눈물짓거나 통곡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붉어진 눈가만이 그의 슬픔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몇 달 안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라버린 혜성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혜원은 혜성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를 꽉 껴안았다. "부디... 몸조심 하거라..." "......" "힘들 것이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만큼 치욕스러운 날도 있을 것이다. 허나, 제발 버티거라. 내 이곳에서 너를 다시 데려오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할 터이니... 부디... 그때까지 버텨다오." 혜성에게서의 답은 없었다. 혜원은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혜성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혜성은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짧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천천히 말 위에 올랐다. 혜성과 금국까지 함께하게 될 몸종이 옆으로 와 말고삐를 잡아 쥐었다. 천천히... 혜성을 태운 말은 앞으로 움직였다. 비령궁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서쪽에서 봄 내음을 가득 담은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 가득한 꽃향기를 맡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진 혜성이었지만 순간적으로 크게 움찔한 혜성은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비령성의 뒤편으로 멀리 묘안산이 보였다. 어깨까지 오는 혜성의 머리칼을 어지럽힌 바람이 묘안산의 나무들을 흔들었다. 너무나 먼 거리였지만 혜성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 옷자락이 보였다고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혜성의 뺨을 타고 눈물이 한두 방울 흘러내렸다. 잠시간 묘안산을 바라보던 혜성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잠시 멈췄던 발걸음이 다시 움직였다. -네게 용서를 바라진 않는다. 다만... 나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와 스승님에게 속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작품 정보
〈화용별곡〉은 Haemeel 작가의 BL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연재 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1년 1월 14일이다.2026년 10월 16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17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