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제일 가는 부를 축척한 셜리가의 상속녀 제인은 부모님을 잃은 뒤 상실감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정체를 숨긴 채 일에만 매진한다. 현재 제국에서는 귀족과 부자들이 가난한 학생과 예술가를 ‘후원’하는 게 유행이다. 사실 말이 후원이지, 더러운 유혹이나 추문이 되는 게 대다수. 본인만큼은 저 더럽고 저급한 부자들 취미에 빠지지 않겠다 결심했으나……. “그럼 내가 하면 키다리 숙녀인가? 키다리 부인이나 아줌마는 아닐 테니.” 제국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비운의 공자, 몰락한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인 루에른을 본 순간 달라진다. ‘내 후원은 다른 인간들의 후원과는 다르다! 나는 순수해!’ 루에른은 거절하려 했으나 후원의 대가가 고작 편지에 답장하기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후원을 받아들이고, 아직도 당신이 믿는다는 제 찬란한 미래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겐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없기에, 편지를 주고받으며 루에른은 따뜻한 후원자에게 마음이 가고야 마는데……. 나의 애정하는 키다리 숙녀님. 제 마음의 기쁨이여. 제 졸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 번만 와 주실 순 없을까요? 보고 싶습니다. 편지를 쓴 루에른은 차게 웃었다. 이래도 날 보러 안 올 건가? * * * “몇 번이나 상상했지만…….” 낮다 못해 잔뜩 음침해진 목소리가 귀를 축축하게 젖혔다. “상상보다 더 예민하고.” 말을 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아무 미약한 날숨에도 움찔움찔했다. “야하네요.” 제인의 눈앞으로 흰 별이 툭 튀었다. “아, 아! 그, 만, 아, 으응, 아, 이상, 아아!” “응, 가도 돼요.” 질끈 감긴 사이로 투명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부끄럽게도 아래에서도 물을 흘렸다. 세상에,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루, 에른…… 우리, 이러면 안되는…….” “안 되는 게 어딨어요.” 곧 철컥,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제인의 가물가물하던 눈이 홉뜨였다. “당신은 모를 거예요.” “…….”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듣기 좋은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살짝 멀어졌다. “실컷 싸 줄게요. 소원대로.” 남자의 목소리가 아주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주 멀게 “그 새끼보단, 내가 낫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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