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은조가 찾아왔다. 5년 만에, 그 뻔뻔하고 잔인한 낯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그 흔적을 지우는 데 온 20대를 쏟아 부어야 했던 파멸적인 첫사랑이었다. “쫓아내.” “잠깐이면 돼요, 5분만.” “잠깐도 안 되겠는데.” “…….” “내가 비위가 약해서.”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가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 눈꺼풀 위에 입을 맞추던 첫밤의 기억을 태서는 바스라트렸다. “후회, 안 하겠어요?” 그 봄밤처럼 은조가 물었다. 달빛 속에서 빛나던 새하얗고 새처럼 가녀린 얼굴을 하고서, 그가 머저리처럼 숭배하던 입술을 움직였다. 놀랍게도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나 그저 어리석은 여자일 뿐이었다. 하룻밤 불장난으로 그의 사랑과 평생을 풍요롭게 할 부를 전부 다 잃어 버린 한심하고 괘씸한 여자. 그는 대답 대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 “여기, 사장님 사진이 들어 있는데요…?” 그의 턱짓 한번에 은조가 쫓겨 나간 뒤 테이블을 정리하던 비서의 손에서 서류봉투가 후두둑 떨어졌다. “…….” 사진을 주워 올린 손끝이 조용히 요동쳤다. ‘후회, 안 하겠어요?’ 초연하고 담담한 은조의 목소리가 잔상처럼 떠돌았다. 태서는 욕을 뱉으며 밖으로 뛰쳐 나갔다. 비가 씻겨 내려간 거리 위에는 그 혼자였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몰아쉰 태서가 손에 움켜 쥔 사진을 들어 올렸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아이의 얼굴 위로 차가운 빗방울이 무심히 내려 앉았다. 그가 아니다. 이건……. 그와 똑같이 생겼지만 자신이 아니었다. 하얀 입김이 뜨겁게 피어 올랐다. 심장이 폭주하듯 날뛰었다. 은조가 아이를 낳았다. 그의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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