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부러운 것 없는 서원 그룹의 철부지 공주님 윤아린. 온실 속 화초처럼 도도하게 자랐지만, 여덟 살 연상의 약혼자 권태하 앞에서만은 늘 온순한 양이 되고야 만다. 제 마음에 한없이 무심해 보이는 그를 볼 때마다 밉고, 애틋하고, 서러워 안달이 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곁에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 자신과는 달리 무척이나 어른스럽고 세련된 여자가. * ‘우리 공주님이 삐졌으려나.’ 권태하는 화면 위에 떠 있는 빨간 점을 느슨한 시선으로 보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 아린이 끼고 있는 약혼반지에 내장된 위치 추적기였다. 물론 자신이 직접 준비한 것이긴 했다. 이건 감시 같은 게 아니었다. 보호였지. 어디서나 눈에 띄는 예쁘고 귀여운 것이 ‘내 것’이라면, 응당 자신이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제 손안에 얌전히 있던 윤아린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권태하는 이성을 잃고 돌아버리는데. 기어코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간 제 공주님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러니까 네가 아직 애라는 거야.” 쌕쌕 고른 숨소리를 내뱉는 얼굴을 눈에 담으며 권태하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먹지도 못하는 술은 왜 마셔.” 아린의 몸을 감고 있는 시트를 끌어 내리자 금세 무방비한 몸이 그의 아래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권태하는 가냘픈 목덜미를 부드럽게 쥐었다 폈다. 당장이라도 제 흔적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아랫배를 지독하게 긁어 댔다. 엄지로 쿵쿵 뛰는 혈관 위를 느릿하게 짓누르던 그가 고개를 숙여 새하얀 가슴 위로 얼굴을 묻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잠들어 있는 아린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응? 개새끼가 나쁜 짓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권태하가 히죽, 웃음을 흘렸다. 폐부에 들이차는 윤아린의 살냄새에 머릿속이 들끓기 시작했다. 자신이 좆같은 인간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잡힌 공주님은, 겨우 엉덩이를 몇 대 때려 주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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