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개혁에 막 시작되려는 새로운 시대. 그러나 헤이스팅스가의 가주 데미안은 새 시대에 발을 맞추기는커녕 당장 먹고살 걱정이 앞서는 처지다. 결국 제 몸을 팔러 갈 지경에까지 이른 최악의 순간, 타이밍 좋게 데미안을 찾아온 한 남자. 잘 차려입은 옷과 건장한 체구, 훤칠한 이목구비. 탁한 녹색의 눈동자. 분명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과 달랐지만 데미안은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가, 어떻게….” “바로 알아봐 주니 기쁘네요. 사슴을 잡으러 왔는데 여우가 걸릴 줄은 몰랐지만.” 남자가 제게 사냥용 장총을 겨눴다. 총구의 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예쁜 황금색 털의 여우가.” 덧붙이는 목소리 끝이 희미하게 들떠 있었다. 남자, 셰인은 데미안에게 있어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 둔 죄악감의 원인이자 절대 인정할 수 없던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옛날 제 장원의 노예였던 셰인이 번듯한 성까지 가지고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건 주종관계를 뒤바꾸는 것이었다. “사내새끼가 잘해 주는 이유가 뭐겠어요? 다 어떻게 한번 해 보려고 그러는 거지. 내 정부 노릇을 해 줘요. 7년을 전쟁터에서 구르다 살아 돌아왔는데, 잠시 어울려 줄 수 있잖아요?” 데미안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갚아야 할 죄가 있기에, 그가 무엇을 원하든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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