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나를 혹이라고 불렀다. 나의 이모는 나를 복이라고 말했다. 아홉 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서 나는 나를 복이라고 말한 이의 손을 잡았다. 이모를 따라 제주로 간 나는 그곳에서 많은 처음을 경험했다. 첫 전학, 첫 친구, 첫 싸움, 첫사랑까지. “고사리 장마가 뭐야.” “봄비 오는 시기요. 여기선 고사리 장마라고 불러요.” “왜?” “이 비를 맞아야 고사리가 통통하게 자라서요.” 남자의 눈에 장난기가 스며 있었다. 거기다 미소까지 짓고 있으니 내 또래처럼, 꼭 소년처럼 보였다. “네가 지어낸 말이지?” “아니거든요?” “여기 고사리가 유명하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그래서요? 아저씨가 모르면 안 유명한 거예요?” 내 말에 선이 예쁜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든 것이 단단해 보이는 남자인데 환히 웃는 모습은 연하고 부드러웠다. 그 웃음에 나는 현혹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최악의 순간에 다시 남자를 만났다. 천천히 내 얼굴을 훑어내린 눈동자가 다시 올라와 내 눈을 바라보았다. 긴 눈 맞춤 끝에 한쪽 눈썹을 찡그린 남자가 물었다. “어디서 봤나요, 우리?” 나는 남자를 첫 실패라고 마음에 적었다. 그는 나를 뭐라고 말할까. 일러스트: 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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