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를 지독히도 짝사랑하는 서브 남주의 약혼녀에 빙의했다. 나를 보며 한숨을 쉬는 건 물론, 악담마저 서슴지 않는 서브 남주의 언행은 기가 막혔다.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하느니, 죽는 게 낫겠습니다.” 그럼 죽으세요, 이 공작 놈아! * 허울뿐인 약혼이었다. 나도, 리카르도도 원하지 않았던 약혼. 게다가 빙의자인 나에게는 돌아갈 세계가 존재했다. 서로 갈 길 가면 완벽해지는 상황. 그런데 서브 놈이 갑자기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레온에게 가시려고요?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줄곧 말하던 첫사랑에게?” 긴장한 걸까. 나를 붙잡은 리카르도의 손이 무척이나 차가웠다. “압니다. 당신이 레온을 사랑한다는 사실쯤은.” “……알면서도 이러시는 거라고요?” “그래서 당신의 처음을 달라고는 말 못 합니다. 첫사랑이든 뭐든, 그게 중요하다면 알아서 하세요.” 리카르도의 눈이 서서히 떨려 왔다. “대신 마지막 사랑은 나와 하십시오.” ▶잠깐 맛보기 “파혼장에 서명은 했어요?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답장이…….”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뭘 버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착각이라는 듯, 리카르도가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받자마자 갈기갈기 찢어서 버렸죠.” “미쳤나 봐, 그걸 왜 버려요!” 이 새끼가 돌았나? “이미 이야기는 다 된 거 아니었나요? 애초에 파혼을 원한 건 그쪽이었잖아요.” “일전에 말씀드렸죠. 전, 당신이 저를 미워하는 게 좋다고요.” 이어지는 그의 말에 소름이 끼쳤다. 그래, 예전에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 모습이 더 예뻐 보인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이제 보니, 이놈은 나를 장난감처럼 여기는 게 분명하다. 예전에 자신을 괴롭혔던 비앙카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니 신기한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리카르도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파혼을 원하셨으면 직접 파혼장을 가지고 오셨어야죠.” 그러니까, 리카르도의 말은……. 재킷과 파혼장을 ‘직접’ 돌려주러 가지 않아서, 파혼을 해 주지 않은 거다? 그런 내게 리카르도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는 저를 피하지 마세요. 당신이 진정으로 파혼을 원한다면.” 리카르도의 말에는 논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반박하기엔 어디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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