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지금 누가 가졌는지 똑똑히 기억해. 아직도 네가 왕족인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왕가의 마지막 공주이자 성녀 시에나는 처형을 면한 대가로 왕정을 무너뜨린 군부대장 리하르트와 결혼한다. “네 신한테 아이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 그게 네 살길이니까.” 아이를 못 가지면 죽이기라도 할 셈일까? 그런데 어쩌지. 이미 난 죽어 가고 있는데. * * 시에나의 비밀을 마침내 눈치챈 리하르트는 창백하게 질렸다. “이토록 엉망이 된 나를 두고 그렇게 쉽게 죽음으로 사라지려고?” “그냥 날 보내 주면 안 돼?” 여기서 잡히면 이제 정말로 끝이라는 생각에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남편의 집착은 상상 그 이상이었는데. “총 쏘는 법 알지?” 그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좋다는 얼굴로 왼쪽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를 쏘고 달아나거나.”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 타락에 대한 유혹이라도 하듯 달콤했다. “아니면 다시 나한테 잡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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