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죽여주세요.” 결혼 시장의 재물로 팔려 다니던 지젤은 태풍이 몰아치던 밤, 악명 높은 에클립시스 페르가의 해적선을 마주한다. 어차피 홀로 살아남길 바라지도 않았기에 그녀는 그저 죽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보통은 살려달라는데, 특이하군.” 지젤의 의도와는 달리 남자의 눈은 오히려 더 흥미롭게 빛났다. * 신이 빚은 듯 고결한 얼굴과 달리 그의 말투는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날 것 그 자체였다. “소리를 안 내려는 이유가 해적 놈에게 놀아나는 게 창피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고귀하신 공작부인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서 뒹구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질 나쁜 청회색의 시선이 그녀의 전신을 타고 올라가 흐릿해진 연둣빛 눈에서 멈췄다. 다가올 무언가를 예감한 지젤의 몸이 순간적으로 떨렸다. “지젤. 그거 알아?”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목소리 중 가장 다정한 말투로 그녀를 불렀다. 흡사 연인을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에 연둣빛 눈이 오히려 더 잘게 요동쳤다. 얼굴로 쏟아진 붉은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넘겨준 그가 지젤의 귀에 속삭였다. “해적이 내 운명이라면 약탈당하는 건 네 운명이야.” (※ 본 작품에는 강압적인 관계 및 노골적인 대사 등 자극적인 소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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