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열세 살, 고집스런 고아소녀, 한서희 후원하던 고아원의 소녀를 거두어 기르게 된 김재원 “정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당장 짐 싸서 나가. 단! 법적인 보호자가 아직은 나야. 나를 설득해 봐.”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를 닮은 어조였다. 서희가 눈물 맺힌 눈을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 어미를 잃은 새끼 새의 몸짓만 같았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재원 역시 단호하기만 했다. 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이해했니? 내 말? 네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내 허락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다고. 그러니 나가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머물 곳은 어디로 정했는지, 지금부터 낱낱이 네 계획을 써서 나한테 가져와. 설득시키면 나가게 해줄게.” 그 말에 서희의 눈동자가 한정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들어 가방에서 종이를 부스럭부스럭 꺼내는 모양새를 지켜보던 재원이 옆에 놓인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다 쓰면 나한테 가져 와.” 침대에서는 한 번도 자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듯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했고, 새물내가 물씬 풍겼다. 도우미들의 말에 의하면 이 어린 아가씨께서는 담요 하나만을 품에 안고서 바닥에 웅크리고 잠을 주무신다고 하니, 그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들어야하는 재원으로서도 미칠 노릇이었다. 내내 참아오던 것이 오늘에서야 폭발한 것이다. 사각사각사각. 헌데 옆에서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써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와 재원은 서희 몰래 고개를 돌려 소녀의 가녀린 옆태를 훔쳐보았다. 턱에 팔을 괸 채로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연필 끝을 물어뜯으며 고민에 휩싸인 아이의 심각한 표정이 사뭇 귀엽다. 크면 예쁘겠네. 그의 입가에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서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재원의 시선도 모른 채 연신 흘러내리는 머리를 귀 옆으로 넘기며 정성껏 생각을 작성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순간 그와 딱 눈이 마주쳤다.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는 소녀풍으로 꾸며진 침대에 옆으로 괴어 누운 채로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얄밉게도 눈매를 접어가며 웃고 있었다. 얼른 표정을 싹 지운 이후에 서희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그에게 말도 없이 종이를 슥 내밀었다. 그가 말했다. “받아주세요, 해봐.” 서희가 눈을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 “어허! 받아주세요!” 눈을 내리깐 서희가 결국 그의 뜻대로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받아……주세요.” 곧 있으면 이 집을 나갈 것이었기에 이런 일 쯤이야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그녀에게서 휙 낚아채듯 종이를 가져간 그는 잠시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어느새 침대 머리맡에 놓인 사과를 베어 물고 있었다. “글씨 잘 쓰네.” 서희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 너 무시하는 거 아니야. 예쁘게 쓴다고.” 그러더니만 곧 서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만한 일이 벌어졌다. “어디 보자. 나는……, 이 집을 나가게 되면 일단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입니다. 학교는 다닐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그가 또다시 사과를 한 입 커다랗게 베어 물더니 아삭아삭 소리 나게 씹어가며 종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세상에. 학교는 안 다니고 일만 하겠다고?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그리고는 다시금 종이에 쓰인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는 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은 조금만 먹어도 상관없으니, 식비는 크게 나가지 않을 거예요?” 그가 종이에서 힐끔 눈동자를 들어 올리더니 그를 외면한 채로 꼿꼿이 앉아있는 서희를 훑어 내려갔다. “밥 안 좋아하는 거 알아요. 알고요, 아가씨. 근데 왜 요새 맥을 못 추고 픽픽 쓰러져요? 그래가지고 어디 아르바이트는 제대로 하겠어요?” 그때부터 서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재원이 종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서희를 향해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머물 곳은 왜 안 적었어요?” 머뭇거리던 서희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찜……질.” “예? 뭐라고요? 크게?” 그가 귀에 손을 가져다대며 서희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댔다. 서희의 얼굴은 이미 달아오를 데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찜질……방이요.” 재원이 코웃음을 쳤다. “오호, 이 아가씨 봐. 학교도 안 가고 일만 하고 먹지도 않고 찜질방에서 양머리 하고 돌아다니시겠다?” 서희가 씩씩거리다가 이내 눈동자 사이에서 눈물을 스멀스멀 밀어내기 시작했다. 툭. 투둑.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찍. 찌익. “울어도 소용없어. 네 얼굴에도 말이 안 된다고 써져 있어. 떼쓰지 마.”
작품 정보
〈크리스마스에 만난 천사〉는 송여희 작가의 로맨스 웹소설이다.
미스터블루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며 출판사는 로망띠끄다.
최근 7일(10/21~10/27) 조회수는 미스터블루 6 늘어 누적 940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