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나는 낯선 세계에서 눈을 떴다. “왜 하필 차원이동을 해도 무협이야.” 이곳에 대해 아는 거라곤 무림인들은 화려한 기술을 쓰기 전에 본인 이름 앞에 오글거리는 별명을 우렁차게 외친다는 정도가 다인데. 온갖 설움을 겪으며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던 와중에 우연히 보석을 주웠다. “그분은 제게 아무것도 약속하실 수 없다 하셨어요. 그래서 성도, 이름도 알려주지 않으셨죠. 다만 이 구슬을 주시며 저희의 인연을 기억하자 하셨을 뿐.” 보석을 비싸게 팔아먹을 기회다 싶어 적당히 사연을 붙여 내다 팔았다. 목돈과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소저께서 이 야명주를 전당포에 넘기셨다고요.” “예, 예?” “정인에게서 받은 징표라 주장하셨다 들었습니다.” “대체 누, 누구세요?” “소저께서 팔아넘긴 이 야명주는 저희 세가의 가보입니다. 5년 전 실종되신 대공자께서 지니고 계시던 물건이지요.” “……!” “저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젠장. X됐다. 그런데 실은 대공자가 살아 있었단다. 심지어 내가 사기 친 사실을 알아내서 당당히 협박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소저께서 저를 해하고자 한 배후를 찾는 일에 협력해 주셔야겠습니다.” “저, 전 못 해요!” “소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이 자리에서 죽어 입을 다물거나, 제게 협력하시거나.” 그의 협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정혼녀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도무지 이 가짜 정혼자의 속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나한테 왜 이렇게 상냥하게 굴어요?” “참으로 까다롭군. 매섭게 굴면 매섭다며 울어대고, 모처럼 친절을 베풀면 이상하다며 질문을 퍼부어 대니.” 아니…… 자꾸 설레니까 그렇죠. 정신 차려야 해, 계나리. 목표는 오로지 가짜 정혼녀 노릇을 잘 끝내고, 두둑한 보상금을 받아 편히 놀고먹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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