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멸망시킬 불꽃은 이제 좁은 자취방의 먼지를 터는 우스꽝스러운 프릴 앞치마 위로 비참하게 추락했다. 오만방자한 대악마 이사벨에게 나약한 인간과의 계약은 한낱 가벼운 유희에 불과해야 했다. 그러나 단 한 장의 계약서를 오판한 대가는 그녀의 영혼을 통째로 옭아매는 '절대 복종'이라는 끔찍한 족쇄로 돌아왔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미천한 주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지만, 살기를 띠며 반항하려 할 때마다 목을 옥죄어오는 검은 초커의 붉은 저주는 그녀의 고고한 자존심을 한낱 비참한 비명과 신음으로 짓눌러버린다.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려던 손에 쥐어진 것은 파괴의 마법 대신 초라한 먼지떨이뿐. 이사벨은 굴욕적인 복종의 맹세 아래 피눈물을 삼키며, 끓어오르는 지옥의 분노와 핏빛 복수심을 부들거리는 걸레질 한 번에 애써 억눌러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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