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남자 친구 흉내 좀 내줘. 물론 당분간이면 돼.” “전 남친 결혼식에 같이 가달라는 것도 아니고, 당분간 남자 친구 흉내를 내달라는 거야?” “응, 당분간이면 돼.” 건설 역사의 산증인 이도 건설이 젊은 층을 겨냥해 창립한 독립 브랜드 ‘이건빌’의 대표 강도형에게 채원은 방향성을 같이하는 완벽한 공간 디자이너이자 숨은 조력자였다. 그녀에게 신세를 질 때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말했지만, 설마 그 원하는 것이 ‘남자 친구인 척’ 해주는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그 가짜 연인 관계가 무려 4년째 이어질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고. 가짜 연애에 조금의 애착도 없이 언제든 끝내고 싶어 하는 채원을 볼 때마다 도형은 설명 못할 조급함을 느끼곤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 친구 흉내를 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채원이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참혹한 기억으로 인해 사랑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그녀에게 스며드는 일밖에는. 그리고 이제 그만 이 쇼윈도 관계를 끝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진실한 사랑을 마주하기 위해 모험을 걸어야 하는 이 순간, 도형은 눈을 감고 말한다, ‘이제 그만 이 관계를 끝내자’고. ‘널 사랑하지 않아.’ 그동안 숱하게 해온 거짓말의 거짓말을 그만두기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그녀와 진실한 관계를 갖고 싶다. [본문 내용 중에서] “뭐라고 했어, 지금?” “이제 그만하자고.” 고개를 돌린 그녀는 차창을 조금 내렸다. 차가운 밤바람이 코끝에 닿자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채원은 애써 태연한 말투로 물었다. “여자 생겼나 봐?” “생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치사하기는.” “치사해?” 오후에 할아버지 집 2층에서 보여 준 그 눈빛은 뭐냐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던 그 손길은 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답하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리는 데다 생각나는 말이 없어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꼬박 4년이야, 인심 많이 쓴 거 알지?” “훌륭해, 3대가 복 받을 거야.” 비꼬듯 대꾸하는 순간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엉켜드는 생각들로 엉망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렇게 끝내고 나면 우린, 아니,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후우!” 기어코 한숨을 쏟아낸 채원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멀쩡하게 저녁 잘 먹고, 당장 손자사위가 될 것처럼 능청스럽게 굴다가, 갑자기 이러는 저의가 뭐야?” “몰라서 물어?” “어, 몰라서 물어.” 채원은 바짝 약이 올랐다. 사귀자는 말 대신 이런 식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도형이 얄밉기까지 했다. 하긴 그가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대꾸할 말은 뻔했다. 도형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짧은 순간 채원은 그가 사라지고 없을 시간을 떠올렸다. 더는 퇴근 후에 만나는 일 같은 건 없을 테고, 주말마다 사이좋은 커플이라도 되는 것처럼 함께 대동시로 향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른들께는 내가 말씀드릴게.” “도대체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채원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그가 왜 이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다행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끝’을 말하는 거라면 진짜 끝은 아닐 테니까. 놀란 마음을 회복한 그녀가 제법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편한 대로 해.” “사람들 이목도 있고 하니까 되도록 연락하지 마.” “왜?” 말도 안 된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도형이 되물었다. “왜는 무슨 왜야, 여기가 할리우드도 아니고 누가 전 여친하고 화목하게 지내?”
작품 정보
〈거짓말의 거짓말은〉은 고은영 작가의 로맨스 웹소설이다.
미스터블루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며 출판사는 더로맨틱이다.
최근 7일(10/21~10/27) 조회수는 미스터블루 8 늘어 누적 1,10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