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던 밤. 지한은 한순간의 실수로 거친 바다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바람포구의 작은 식당 주인, 해인이 기적처럼 그를 구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깊은 상처를 입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온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무심하게 따뜻한 흰 죽 한 그릇을 건넬 뿐이다. 삼삼하지만 텅 빈 마음을 가득 채우는 온기. 지한은 그 죽 한 그릇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식당’에서 두 사람의 위태롭고도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해인과 지한. 두 사람은 느리지만 깊숙이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데…… ▶잠깐 맛보기 ‘참. 별일을 다 경험하는군.’ 파도에 휩쓸려 요단강 건너기 직전에 돌아오고, 생면 부지의 사람의 호의에 기대어 생명을 부지하고, 그 사람에게 보따리 요구하듯 돈까지 빌려 보고. 입이 썼으나, 별다른 수가 없었다. 일단 병원비를 먹튀하지 않게 되면서 얻게 된 새로운 창피함을 묵묵히 책임지는 수밖에. 솨아, 솨아,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오후 나절이라서일까. 파도 소리는 거세기보단 시원하게 들렸다. 여전히 그의 팔뚝에 솜털이 솟게는 했지만, 휩쓸려 갔던 때와 다른 색감의 바다는 파도로도 다른 음악을 들려주었다. “보냈어요. 안녕히 가세요.” 원무과장과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지한의 귀에는 오직 파도 소리만 들려왔는데, 그새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신호가 들려왔다. 민망해도 함께 나서고, 원무과장님께 인사도 전해야 했는데 넋을 너무 놓고 있었다. 지한은 깨달은 동시에 돌아섰다. 마침 여자도 차에서 돌아서고 있었다. 눈을 마주한 순간 움찔하며 반걸음 물러선 건 지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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