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하려 애쓸 필요 없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붓끝이 종이를 미끄러질 때면 머릿속이 비워졌다. 잊고 싶었던 것도, 애써 기억하려 했던 것도 모두 흐려졌다. “생각보다… 조용하구나.” 낯익은 목소리가 방문 앞에서 들렸다. 소소는 그저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허락인 양 도원은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시선은 바닥에 흩어진 종이 위를 천천히 훑었다. 붓끝에서 쏟아진 자유로운 선들, 의미를 거부하는 색들.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조용히 말라갔다. “너의 시간은 이리 채워지는구나.” . . . 도원은 한 손으로 미간을 짚으며 짧은 숨을 뱉었다. 답답한 기운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방은 조용했다. 기척조차 없었다. 소소는 침대 위에서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듯했다. 곁에 앉은 도원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자네.” 흘러내린 진주빛 머리카락이 그의 볼을 덮고 있었다. 도원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것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는 미동도 없었다. “정말 자누? 그저, 피한 것이누?” 도원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가슴 한켠이 텅 비어 있는 듯 아렸다.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했다. “너… 정말 이럴래?” . . . “나는…”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으나 불안함이 묻어났다. “…나는 오늘, 너에게 용서를 빌러 왔다.” 그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소소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폐하께선… 언제부터 이렇게 서툰 분이었습니까?” . . . “용서를 비는 건 전에도 했습니다. 한 번이면 족합니다.”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떨림은 도원이 듣지 못할 수 없었다. 그는 더욱 낮은 자세로 몸을 숙였다. “그 한번이 부족했으니까. 나는… 언제라도, 수시로 사과할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미쳐버렸고.#전부 다 네 탓이야, 나만 잘났고.#그래서 미친 듯이 후회하지만.#죽어다 깨어났다. 도망가자.#몸이 약해 도망도 못 가고.#아무리 봐도 내 팔자 내가 꼰 거 같은.#타죽을 줄 알고 달려드는 불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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