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아이돌 그룹의 논란 이후 갑작스러운 배우 데뷔, 그것도 탑급 배우 채유겸의 복귀작 조연으로 떡하니 꽂힌 낙하산. 화려한 부정적 수식어 뒤에 서 있는 ‘백이담’은 사실 아이돌도 배우도 아니고, 오메가는 더더욱 아니며, 심지어 백이담도 아니다. 평범한 대졸 백수 백이안. 갑자기 터진 쌍둥이 동생의 연예계 논란으로 원치도 않는 해외 취업에, 이제는 취업 사기까지 당한 참이었다.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쌍둥이 동생이 찍었어야 할 드라마 대본과 묘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알파, 채유겸.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건 흔치 않은데, 우성 오메가예요?” 오메가면 다 건드려 본다는 좋지 않은 소문에, 완전 범죄를 위해서 가장 피해야 할 우성 알파지만, 위험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냉정하게 밀어내지 못한다. 채유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이미 반쯤 넘어가고 있었다는 걸 자신도 부정할 수가 없다. 채유겸은 내심 자만하고 있었다. 백이담은 특이한 오메가였다. 페로몬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베타에 가까운 오메가. 그래서 채유겸은 평소에도 그를 대할 때 큰 자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때때로 장난이나 심술을 부리고 싶은 날이면 몰래 페로몬을 묻혀 두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러트가 온 알파에게 오메가의 페로몬은 기폭제와도 같았다. 하지만 백이담은 향이 없으니까. 문을 열어 줘도, 잠깐 얼굴을 봐도, 자신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열에 들뜬 몸을 잠깐 식혀 줄 물 한 모금 정도 될 것이라고. 완벽한 오산이었다. 백이담을 제 품 안에 들인 순간 채유겸은 깨달았다. 자신이 그동안 백이담을 원했던 건, 페로몬 따위의 화학 작용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 하하.” 페로몬의 강제적 이끌림을 역겹게 여겼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알파로서 오메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정상성에 안정감을 느꼈다는 사실이 웃겼다. 뜬금없이 실소하는 채유겸을 백이담이 이상하게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채유겸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형, 왜… 많이 안 좋아요? 집에 약 없어요?” “약이 왜 필요해.”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충혈된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네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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