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홀에 핏빛 장미가 들어서니 그보다 더 붉은 왕가의 피가 흐르는구나. 검은 용의 예언 때문에 붉은 머리는 늘 멸시받으며 살아간다. 브릴 체스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릴 체스커. 미안하지만 오늘 죽어 줘야겠다.” 검은 눈의 소년이 나타나 목에 칼을 들이밀더니 대뜸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돈 안 내놓을 거면 내 머리칼 내놔, 이 협박범아!” 머리카락을 잘라 가 놓고 입 씻으려는 도둑놈, 아니, 이안 드세라크 팔릭 공작을 따라간 브릴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제가 왕국의 공주이며, 현 국왕인 숙부가 그녀의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 게다가 이안은 브릴에게 국왕을 함께 죽이자며 계약 약혼을 제안하는데. “계약서를 잘못 이해했나?” “잘 이해했는데? 계약 약혼을 하자며, 너랑 나랑.” “그런데 눈빛이 왜 그렇지? 계약을 하자는 게 아니라 피 튀기게 싸우자는 것 같은데.” 내 눈빛이 어떻길래? 이안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브릴은 결심했다. “넌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내가 왜?” 자리를 벗어나 긴 테이블을 빙 둘러, 브릴은 이안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검지를 들어 정확히 이안 가슴께를 콕 짚었다. “이 계약에서 갑은 나야. 넌 을이고. 갑인 내가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할게.” 계약 약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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