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날 귀찮게 할 일이 없을 거 같아서.” 왜 자신과 결혼하냐는 은재의 물음에, 하준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좋았다.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남자니까. 오랫동안 마음 품어왔던 짝사랑이자 첫사랑이니까. “피곤하다고 대놓고 말해야 알아듣나.” “아…….” “애처럼 다른 사람이 늘 챙겨주는 시기는 지났잖아.” 어린애 취급을 하고, 비수를 꽂아도. 언젠가는 제 마음을 알아주기를, 저를 기억해내 주기를. “너한테 뒷배가 되어줄 친정이 있길 하니, 유산이 남아 있길 하니? 그 몸뚱어리 하나 가지고…….” 남자의 진심 하나만을 바라며 시어머니의 모진 말도 참고 버텼지만. “제가 그이의 아이를 가졌어요.” “…….” “그이와 내 아이를 위해서, 이혼해 주세요.” 그 말엔 무너져 내려,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배 속에서 그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하준은 텅 빈 공간에 남은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십여 년 전, 곤경에 처한 어린애에게 건넸던 제 손수건은 아주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처럼 깨끗했다. 그 어린애가 너였구나. 넌 먼저 날 알아봤구나. 늘 긴장한 기색으로, 좋아하는 티를 숨기지 못하던 어린 아내. 내 여자. 내 여자가,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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