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이제는 엔젠이 되어버린 유리카를 가슴에 품고, 그녀와의 재회를 바라며 여행을 떠나는 파비안. 그의 뒷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지 않으시겠어요? “... 할 수없이... 그러도록 하지, 파비안.” 나의 손에서 그의 손으로 무언가가 건네어졌다. 이로서 나의 특기인 장광설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백히 드러났다. 주아니도 기쁜지 주머니 속에서 연신 꼼지락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득의만만한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 마디를 냉큼 내뱉었다. “그럼, 부탁해요 미르보.” 타는 듯한 붉은 머리의 남자. 정말 오랜 시간이었어. 아니, 나에게만 오랜 시간이었나?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걸. 난 당신을 찾아다니느라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 날로부터 2년을 더 허비했단 말이다. 내가 방금 그에게 건네준 것은 아름답게 반짝이는 녹색 보석. 나에겐 매우 소중한 보석이며 한 나라를 준다하여도 절대 바꾸지 않을 나만의 소중한 보석. 나의 녹색 보석. 오랜 시간 노력하고, 기다려왔어. 이제 나를 만나줄 수 있겠니? “나 참, 웬 놈에게 덜미를 잡혀서 이게 무슨 고생이람.” 조금 약하게 웃어보았다. 방금 전에 펼쳐진 - 나는 이것이 그에게 통했다는 사실에 매우 감격하였다 - 나의 장광설. 나는 페어리 여왕-나는 에졸린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말함으로서 나의 말에 신빙성을 더욱 부각시켰다-을 만났다는 사실을 그에게 여지없이 말하였다. 에졸린이 자신의 딸을 엔젠으로 만든 그에게 분노를 품었다는 사실 묘사는 나의 훌륭한 표현력이 뒷받침해 주었다. 물론, 그녀가 엄청난 악감정을 품었다는 말까지 덧붙여 선량한 페어리 하나 악덕으로 만들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는 에졸린이 우리가 처음 싸웠던 그 괴물 - 역시나 그 은색 괴물 늑대의 이름이 니할룬 이라는 것까지 덧붙였다. -을 한 마디 더 미르보에게 보낼 거니까 내게 그를 보면 알려 달라 하였다고 새빨간 거짓말까지 하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지금 그는 내게서 나의 녹보석 엔젠을 풀어주려 하고 있다. “이 엔젠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것 같군.” 엔젠을 찬찬히 쓰다듬으며 살펴보던 그가 한 말.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나는 유리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려 깊은 나의 동료들... 마지막에 나와 유리카를 위해 저 엔젠을 만든 미칼리스... 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지. 그리고 엘다 렌 역시... 다시 한 번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나를 받쳐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울림을 가진 그의 목소리. 침울해지는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살짝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글자들... 엘다 렌... 미칼리스... “어서 엔젠을 풀어주세요.” “급하긴, 이 엔젠이 애인이라도 되는가?” 나는 말대신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미르보는 나를 한동안 의아한 얼굴로 한동안 쳐다보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엔젠에 대고 몇마디의 말을 중얼거렸다. “..**..****..******...***” 순간, 엔젠이 찬란한 녹색빛을 내었다. 저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빛. 그 빛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넋을 잃고 그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미르보의 당황한 듯 한 목소리. “뭐...뭐야 이거....! 단순히 엔진으로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잖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미칼리스가 무슨 실수라도 한거야? 나 역시 적잖이 당황해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녹색빛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보다 더 당황한 미르보가 들고 있던 엔젠을 떨어뜨리는 순간, 빛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바로 내 앞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는 있지만 확실하게 보였다. 나를 중심으로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내 주위로 쏟아지는 빛. 그 빛을 받은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 듯 한꺼번에 약하게 진동하였다. 나무마다 맺혀있던 이슬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떨어지며 빛에 반사되는 이슬들이 무지개빛으로 빛났다. 빛을 함빡 감싸 안은 향긋한 풀잎, 그곳에 닿은 이슬방울이 유리구슬 깨지듯 그렇게 깨졌다. 아침녘, 형형색색의 새들이 하늘을 향해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비행하는 새들의 모습. “...아름다워...”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전에 엘다 렌과 유리카와 함께 ‘엘프 사냥!’ 이러면서 미칼리스를 찾으러 갔을 때의 풍경과 비슷하였다. 미칼리스... 미카 맞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미카죠? “...”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무언가. 그러나 그것이 흐르는 느낌은 썩 나쁘진 않았다. “푸훗... 미카... 그래봤자 당신 에제키엘을 따라한 거예요... 알아요...?” 200년 전 에제키엘이 그의 동료들에게 했던 선물. 유리카가 말했었지. 에제키엘은 미칼리스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을 열어주는 나무들을 보며 우리가 신기해 할 것이라고, 동료들이 신기해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에제키엘은 분명 기뻤을 거라고... 미카, 당신도 이것을 만들면서 기뻤나요? "이걸로 에제키엘과 공감대 하나 형성했네요? 죽어서 이야깃거리 만들었잖아?" 언젠가 멀지않을 미래에 내가 이 광경을 보면서 기쁘리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기뻐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는 당신도 기뻤나요? 내가 이 풍경을 보고, 옛날 엘다 렌과 유리카와 함께 당신을 만나러 갔던 그 추억. 다시 떠올리라고? 다시 떠올리며 행복함에 젖어 있으라고? “틀려... 아니야...” 나... 기쁘지 않아... 나 너무 슬퍼... 기쁘다고... 해봤자 이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어서 그런 거야... 누구나 이런 풍경을 보면 이유 없이 기뻐지는 거야... 그것뿐이야... 당신을 만나러 가던 그 순간을 추억하는 것마저, 이미 나에겐 아름다운 슬픔이 되어버렸는걸.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미칼리스 당신은 나에게 줄 이 선물을 만들면서 기뻤나요? 그 때, 나의 눈앞에 어떤 영상이 펼쳐졌다. “ ...이런것까지 꼭 해야겠는가 너는.” 익숙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 “하하... 파비안이 우리 목소리까지 잊어버리면 곤란하지 않나.” 이 쾌활한 목소리.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꽤나 많이. 오랫동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짓이지 이런 건...” “파비안이 우리의 목소리를 잊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군 그래? 이봐, 한 가지 더, 우리 모 습을 잊지 말라고 영상으로 하는 것이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전에 분명히 저 목소리를 들었어...! 눈을 다시 한 번 깜빡여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눈앞에는 그들이 있었다. “어이 파비안, 오랜만인가? 하하... 네가 언제 이 엔젠을 풀었을지 몰라서 몇 달 만인지, 그새 몇 년이 지났는지 알 길이 없잖아? 주아니도 잘있지?” 그제야 다시 자각하게 된 사실. ... 그러나 어디까지나 영상이었다. 나의 드워프와 엘프 동료, 두 사람은 죽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아니, 아니지. 지금 영상으로나마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 그러나... “엘다... 미카..." 미친 듯이 영상을 향해 손을 뻗고, 거둬들이고, 또다시 뻗고, 거둬들이고.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그들이지만 잡히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제발 돌아와 줘, 엘다... 미카... 난 여기에 있는데, 왜 두 사람은 그곳에 있는 거야... 제발... 제발 엘다... 미카... “이것을 보았다는 것은 엔젠을 풀었다는 것이겠지? 훌륭해.” 약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영상에 비춰진다. “어이, 고집만 센 난쟁이 영감. 것 참, 얼굴 한 번 안 내밀고 말 한 마디 안 할 거야? 그러다간 죽어서 후회한다?” "이..스나에가 된다면 후회하겠지." 그제야 엘다 렌의 모습도 영상에 비춰진다. “푸훗..."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웃음부터 나왔다. 키 작은 난쟁이 인지라 간신히 얼굴만 영상에 비춰지는 그의 모습. 아마도 까치발을 들어 간신히 모습을 보이는 거겠지. ... 보고 싶었어. 엘다... 그리고 지금도 보고 싶어 엘다 렌... “흠...” 그 말만 하곤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그나저나 꽤나 짓궂은 짓 아닌가 미칼리스. 기절한 사람 바로 위에서 이런걸 만들다니.” “그거야 뭐 어쨌든 난 파비안이 우리의 의도를 알아주리라 생각한다고. 난쟁이 영감.” “그 놈의 난쟁이 영감... 죽기 전에 한 번 싸우고 죽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영상 너머. 엘다 렌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과 미칼리스가 약하게 도리질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알지 않는가...” 생각났다. 황혼검에 의해 두 동강난 그의 할버드. 잘려나간 미칼리스의 오른팔과 깊게 상처 입은 엘다 렌, 그리고 황혼검은 그들이 상처가 낫기도 전에 상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 역시 상처가 얼어붙는 그 느낌, 생생히 잘 아니까... 두 사람은 완벽한 전투불능 상태다. “파비안, 유리카는 다시 살아갈 거야. 너와 함께, 그러니 설마 우리가 없다고 질질 짜고 그러진 않겠지?” “그거야 모를 일이죠... 미칼리스.” 어느새 나는 그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마치 그들과 함께 여행하던 그 시절처럼, 그 시절의 목소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고 있었다. “이봐 파비안, 넌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없냐? 들어줄게, 해 봐.” 듣긴 뭘 듣는단 말이야... 어차피 미리 만들어놓은 영상이잖아요... 그러나 나는 말하고 있었다. 나의 솔직한 한 마디 한 마디를. “엘다 렌 , 정말 마지막인데 고개 한 번 정도는 더 비춰줘요.” 어라? 정말 엘다 렌이 고개를 한 번 더 스윽 비추는 모습이 보인다. 어...라... “엘다, 내게 손 내밀어 줘 봐요.” 내밀어 줄 리가 없었다. 영상인걸. 아마도 엘다 렌은 내가 그 말을 할 줄 짐작했었겠지. ... 그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미카... 내게 준 활은 잘 쓰고 있어요... 그거 알아요? 이제 나도 사슴정도는 곧잘 잡는다고요. 그런데 그 활을 내게 줄 때 뭔가 웃기리라 생각 안했어요? 남의 집 기둥 하나 뽑아온 듯한 길이와 너비의 검에 똑같이 무식 거대한 활을 진 사람이라니... 푸핫. 전 웃긴데요.” 영상속의 미카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더 말 해보란 듯이. 내 말 듣고 있어요? “...있잖아요... 유리카도 많이 보고 싶지만 두 사람도 많이 보고 싶어요...” 정말 나 오늘 왜 이렇게 눈물을 많이 쏟는거지? 그치질 않잖아... 추하게... “저 지금 많이 울고 있어요. 21살이나 돼서 말이죠. 추하죠? 그러나 두 사람 앞에선 나 좀 추해져도 되죠? 그래도 되죠? 나 둘 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못 잡고 있어요... 하, 하하... 엘다, 가만히만 있지 말고... 미카 웃지만 말고..." 내 말을 끊고 들려오는 미칼리스의 목소리. “이제 결계가 사라지고 있어. 이제 정말 작별 해야겠는걸?”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미 미칼리스가 나에게 손을 흔들고 엘다 렌이 나에게 눈빛을 보내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술의 떨림이 좀처럼 멎지를 않는다. ...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린다. “나 아직도 꿈을 꿔요... 잠만 자면 꿈을 꿔요... 우린 매우 즐겁게 살고 있죠... 미칼리스는 그래... 밥그릇을 챙겨 와서 유리와 나와 엘다 렌이 있는 파하잔에 가요... 가서 파하잔 재건을 돕죠... 드워프들도... 엘프들도 모두 힘써서 파하잔을 재건해요...” “그럼 파비안.” 쓴 웃음을 짓는 미칼리스의 얼굴을 보니, 아마도 시간이 된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소매로 눈물을 한번 쓰윽 닦을뿐,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간간히 나르디의 소식이 들려오자 우린 조만간에 나르디를 찾아가기로 결정해요...그리고...” 영상이 꺼졌다. 숲도 사라지고 있다. 미칼리스도, 엘다 렌도 한 순간의 신기루를 보 듯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숨막힐 듯 한 정적. 그리고 침묵. 나는 고개를 숙여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안녕... 미칼리스도... 엘다 렌도... 안녕히...” 그렇게 숲이 완전히 사라졌다. 눈앞에는 내가 있던 현실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 영상... 아마도 유리카를 엔젠으로 만들고, 미칼리스의 결계가 아직 풀리지 않았을 때 만든 거겠지...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엘다와 미카가 사라진 곳을 바라 보았다. 탁 트인 시야 사이로 노랑나비가 꽃을 향해 팔랑거렸다. 엘다, 미카... 당신들은 꿈을 꾸고 있나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나와 같은 꿈을... "...녹보석의...기사... 이 세계에 우리들의 잃어버린 사계절을 찾아준 그는 이제는 스쳐지나가는 행인일뿐... 자신은 전설속의 영웅이 아니라 하여도 이스나에가 알려준 운명대로, 어쩔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듀냐리온 무녀 레 끌로슈의 예언시 안에서의 영원한 기사..." 맑고 고운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엔젠을 풀어준 미르보가 눈 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여느 소년처럼 녹보석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그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아니, 몰랐겟지. 그래... 몰랐을 거야." 그제서야 나는 미로브가 왜 그렇게 당황하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익숙한 은빛 머리카락... 눈앞에 쏟아지는 봄의 향기. 내가 그토록 바라던, 원하던,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던... 초록빛 봄의 소녀. 그녀를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다시 만나는 날,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역시 세상 일이 늘 마음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녀는 어느샌가 내 앞으로 다가와 말없이 나의 눈물을 훔치더니,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몸, 그러나 두 눈은 나와 같이 환희와 그리움에 가득 차 있었다. 잠시후 그녀는 자신의 녹안에서도 흘러내리는 이슬을 애써 참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안그래, 파비안?"
작품 정보
〈[세월의 돌] 영원의 사랑〉은 하루니카 작가의 패러디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13년 1월 2일이다.2026년 10월 16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2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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