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나는 저승차사, 치우다. 난 당신네들의 죽음을 인도한다. 다만 인도할 따름이지 죽음 자체를 관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한낱 고용직일 따름인 것이다. 하여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나를 만났다 하여도 나를 원망하거나 욕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주먹을 휘두른다거나 침을 뱉거나 하는 일도 삼가길 바란다. 다 댁들을 위해 하는 소리니 새겨듣도록. 사후 세계를 관리하는 차사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나처럼 저승의 임무를 시행하는 저승차사와 하늘의 임무를 시행하는 천황차사가 바로 그것이다. 천황차사는 당신네들이 흔히 생각하는 천사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네들이 당신네처럼 언제나 순백의 날개를 단 순진무구한 아이와 같은 모습만은 아니다. 그들은 때로 광폭하고 잔인하다. 그들은 주로 천계를 관리하지만 천계 외에도 저승의 일에 개입해 저승차사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역을 수행하기도 한다. 저승은 어찌 보면 천계의 하청업체 같은 느낌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들의 선정은 애석하게도 저승의 일이 아니다. 명부는 천계에서 정해지며 저승은 하달된 명부를 그저 시행하는 역에 불과하다. 천계에서 하달된 명부는 명부를 관리하는 명부차사에게 전달된다. 그럼 명부차사는 구역 내의 저승차사에게 적배지에 적힌 사자의 명단을 배분한다. 그제야 나의 임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도 난, 사람을 죽이러 간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우리 저승차사들은 커피를 좋아한다. 그 치명적 어둠이 어딘가 죽음을 닮아서다. 하여 우리에게 조금 잘 보이고 싶다거나 하면 커피를 대접하길 권장하는 바이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 이 내 말이 결코! 뇌물 강요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서 꼰지르거나 한다면…정말이지 재미없으니 그리 알도록! 내가 처음부터 저승차사였던 것은 아니다. 나또한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인도한 것이 바로 바리였다. 바리를 따라 저승으로 간 난 그곳에서 심판을 받았다. 재판은 매우 엄격하고 무서우니 다들 살아 있을 때 잘들 살기를 바란다. 이것은 충고다. 내 삶은 간당간당한 인생이었다. 천국행 티켓은 안타깝게도 거머쥘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이승에서의 삶이 허락되었지만 거절하기로 했다. 딱히 미련이랄 것도 없는 생이었다. 대신 난 바리의 권유로 저승차사가 되기로 했다. 사람의 죽음을 좌지우지 하다니 꽤나 재미난 일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크나큰 착각이었다. 단 한 순간도 저승차사가 된 걸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를 인도한 바리 또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연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바리가 대상자들인 인간에게 철저하게 냉정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리는 최고의 저승차사다. 하지만 난 바리와는 달리 그리 뛰어난 저승차사가 아니다. 난 늘 감정에 흔들리곤 한다. 적배지를 들고 대상자를 만나고 나면 일단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새어 나온다. 조폭 똘마니인 조두철을 만났을 때고 그랬고 기러기 아빠인 김동수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물론 노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죽어 마땅한 놈을 만났을 땐 가차 없이 집행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언제나 모두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이 야 할 저승차사가 고작 이런 수준이라니. 형편없다 욕을 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위기의 순간도 있다. 삼천갑자 동방삭의 혼을 인도할 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는 오래 전 명부차사의 명부를 훔쳐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불사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를 좇는 저승차사들의 목숨을 차례로 거두었다. 바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 역시 끔찍한 꼴을 당하고 말았을 터였다. 이미 죽음을 경험한 몸이 또 다른 죽음을 두려워하다니…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상자들의 혼을 인도하는 동안 난 차츰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동방삭을 인도했을 때 그 혼란은 극에 달했고 그 혼란은 마침내 독거노인 조순녀를 인도할 때 폭발하고 말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평등한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난 혼란 속에서도 나의 일을 해 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죽음에 공명정대 따위는 없어 보였다. 난 저도 모르게 조순녀의 죽음을 막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비쌌다. 난 그대로 저승으로 이끌려가고 말았다. 원칙대로라면 난 그대로 날개가 찢겨 혼까지 소멸 당하고 말 터였다. 하지만 동방삭을 잡은 공훈이 아직은 조금 남은 모양이었다.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바리는 그런 나를 끔찍이도 나무랐다. 해야 할 것만 하고, 제발 좀 철이 들라며 나를 몰아 세웠다. 하지만 해야 할 것이란 게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시키는 것만 하는 게 철이 드는 거라면 철 따윈 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몇의 죽음을 더 인도했다. 그 중엔 수의사인 강은영도 있었고 소방관인 방준혁도 있었다. 난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불로 뛰어 들었던 준혁의 죽음을 인도하며 무언가 내 안에 스위치가 켜진 버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걱정하는 바리를 생각하며 애써 그 느낌을 무시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준혁에 이은 내 대상자는 바로 그의 딸 유나였다. 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욱이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건 그 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유나 하나만이 아니었단 사실이었다. 유나가 죽음을 맞는 날은 바로 유나가 다니는 유치원이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유치원 버스에 올라 강원도의 한 유원지로 향했고 그 뒤로 운전사 창욱과 유나의 친구들을 인도할 저승차사가 대거 버스를 따랐다. 며칠 간 내린 비에 고갯길은 미끄러웠고 수순처럼 버스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고 말았다. 버스는 뱀처럼 똬리를 튼 고갯길을 무섭도록 미끄러져 내려갔다. 난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바리의 만류를 뿌리치고 난 무서운 속도로 차를 몰아 버스를 막아섰다. 가드레일에 부딪친 내 차량은 하늘을 날았고 덕분에 속도를 줄인 버스는 간신히 멈추어 설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간이 지났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바리가 잡아끌었다. 저 멀리 나를 잡기 위해 파견된 하늘차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난 그들을 피해 달아났지만 그들의 추격은 거머리처럼 끈질기고 집요했다. 마침내 난 그들과 싸움을 벌였다. 어느새 바리까지 싸움에 끼어들어 나를 막아섰다. 그녀는 언제나 이토록 대책 없는 나를 위해 애를 써준다. 그런 그녀가 나는 한 없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우리는 필사의 항전을 벌였지만 결국 막대한 하늘차사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붉은 오라에 포박당한 바리와 난 끝내 천계로 호송되고 말았다. 지금 난 처형장에 올라 하늘차사의 칼날을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 오열을 하는 바리의 모습이 들어온다. 다행히 그녀는 극형을 면할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하늘님의 명이 떨어지고 부신 하늘 아래 번뜩이는 하늘차사의 칼날이 떨어졌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작품 정보
〈저승차사 생사록〉은 클별이 작가의 현대판타지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연재 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3년 5월 25일이다.2026년 10월 16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5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