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인간계가 비명과 절망으로 뒤덮여 시들어갈 때. 저 높은 곳, 구름 위 천계에서도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내 피부가 왜 이래! 악!" 천계 제3구역, '욕망과 소비의 신전'. 이름답게 신전의 기둥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최고급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장식장은 온갖 보석과 명품 가방, 구두로 빼곡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드레스룸 한가운데에서, 여신 샹드리아는 거울을 붙잡고 발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비의 신'이자 '유행의 선구자'. 천계에서 가장 사치스럽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철없는 여신으로 통했다. 그녀의 권능은 인간들의 '지출'에서 나온다. 인간들이 카드를 긁을 때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 "질렀다!"라고 외칠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이 그녀의 신력이자 미모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지금, 거울 속 샹드리아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찰랑거리던 백금발은 빗자루처럼 푸석해졌고, 사과처럼 탱탱하던 볼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눈가에 생긴 선명한 주름 세 줄이었다. "주름이라니! 내가 주름이라니! 수천 년 동안 아이크림 한 번 안 발라도 완벽했던 내 얼굴이!" 샹드리아가 신경질적으로 화장대를 쓸어버렸다. 와장창! 최고급 크리스털 향수병들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났다. 평소라면 "어머, 내 신상!" 하며 기절했을 그녀지만, 지금은 그딴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 여신님. 진정하십시오. 혈압 오르십니다." 그녀의 곁을 지키던 시종 천사 '나모리노'가 벌벌 떨며 물티슈를 내밀었다. 그는 샹드리아의 히스테리를 받아내느라 탈모가 올 지경이었다. "진정하게 생겼어? 지금 지구 꼴을 좀 봐! 인간들이 돈을 안 써! 지갑을 닫아버렸다고! 아니, 닫은 게 아니라 아예 지갑을 태워 먹었잖아!" 샹드리아는 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차트를 가리켰다. 지구의 소비 지수 그래프가 바닥을 뚫고 지하 멘틀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우주 전체에서 고도의 경제 문명을 이룬 행성은 단 세 곳. 그중에서도 지구는 샹드리아에게 가장 중요한 '꿀단지'였다. 우주 전체 소비지출의 40%가 지구에서 발생하고 있었으니까. 탐욕스럽고, 남 보여주기 좋아하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흥청망청 써대는 지구인들은 그녀에게 최고의 신도들이었다. 그런데 그 꿀단지가 박살이 났다. 미국의 빅테크 부도? 알 게 뭔가. 중요한 건 인간들이 더 이상 명품백을 사지 않고, 오마카세 예약이 끊겼으며, 백화점이 파리만 날린다는 '팩트'였다. "소비가 멈추면 나도 멈춰. 이대로 가다간 나,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어버릴 거야! 옆 동네 '절약의 신' 그 꼬장꼬장한 구두쇠 영감탱이가 나보고 비웃을 거라고! '아이고, 샹드리아 여사, 꼴이 그게 뭔가? 쯧.쯧.' 하면서!" 샹드리아는 공포에 질려 자신의 뺨을 감싸 쥐었다. 신력이 약해진다는 건 단순히 힘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존재의 소멸이다. 또한 그녀에게 있어 추하게 늙어가는 것은 소멸보다 더 끔찍한 형벌이었다. "나모리노! 방법이 없어? 어떻게든 저것들이 다시 돈을 쓰게 만들란 말이야!" "하오나 여신님... 인간들에게 돈이 없는 걸 어떡합니까. 주머니가 비었는데 털어봐야 먼지밖에 더 나오겠습니까? 지금 지구는 물물교환 시대로 회귀하기 직전입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쓰게 해야지! 빚을 내서라도 쓰게 하던 시절이 있었잖아! 카드론! 리볼빙! 그런 거 있잖아!" "그 빚을 낼 신용조차 박살이 났습니다. 은행도 문을 닫는 마당에요." 나모리노의 팩트 폭격에 샹드리아는 뒷목을 잡았다. 핑- 하고 현기증이 돌았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잠시 후, 멈춰 선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궁지에 몰린 맹수, 아니 궁지에 몰린 쇼퍼홀릭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그래... 신용이 없다면, 다른 걸 담보로 잡으면 되잖아." "네? 다른 거라면..." "돈 대신 낼 수 있는 거. 인간들이 가진 것 중에 제일 소중하고, 누구나 공평하게 가지고 있는 거." "그거야 뭐... 가족? 사랑? 건강?" "아니, 더 근본적인 거." 샹드리아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앙상해진 손가락을 딱 튕겼다. "목숨. 수명(壽命)이잖아." 나모리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들고 있던 물티슈를 떨어뜨렸다. "여... 여신님? 설마 인간의 수명을 건드리시려는 겁니까? 그건 천계 헌법 제6조 위반입니다! 운명의 신들이 알면 당장 감찰반 파견할 겁니다!" "시끄러! 내가 지금 늙어 죽게 생겼는데 법이 대수야? 그리고 내가 직접 뺏는 게 아니야. 놈들이 자발적으로 '교환'하게 만드는 거지. 거래라고, 거래." 샹드리아는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신력의 불꽃. 전성기에 비하면 짜증나는 수준으로 초라했지만, 아직 70% 정도는 남아 있었다. "내 남은 신력의 20%를 쓴다." "20%나요?! 미치셨습니까? 그 정도면 신격이 강등될 수도 있습니다! 하급 신으로 떨어지신다고요!" "피부가 썩는 것보단 나아. 하급 신이 돼도 예쁜 하급 신이 낫지. 이 신력을 쏟아부어서 '시스템'을 만들 거야. 인간들의 욕망을 다시 불지필 도화선." 샹드리아는 허공에 손을 휘저어 천계의 제작 도구를 소환했다. 쿠궁-. 거대한 황금 모루와 보석이 박힌 망치가 나타났다. 드레스룸 바닥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신력을 실타래처럼 뽑아내기 시작했다. 눈부신 분홍빛 에너지가 모루 위로 쏟아졌다. "자, 이제 이 힘을 담을 '그릇(Item)'이 필요해. 어떤 형태가 좋을까..." 샹드리아의 눈이 옷장을 훑었다. 그녀는 '폼생폼사'의 여신. 아무리 급해도 투박한 갑옷이나 칼, 반지 따위를 만들 순 없었다. 촌스러운 건 딱 질색이었다. 스타일리시하고, 인간의 가장 은밀한 욕망과 닿아 있으며, 무엇보다...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해. 그래야 내 권능이 24시간 작동하지. 목욕할 때도, 잘 때도." 그녀의 시선이 옷장 구석, 가장 은밀한 곳에 걸린 실크 란제리에 꽂혔다. 입가에 음흉하고도 매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그래. 저거야. 나... 나모리노?" "네, 넵!" "천계 최고의 실크를 가져와. 아주 부드럽고, 질기고, 영롱한 놈으로. 그리고 자수용 바늘도 가져와." "저... 뭘 만드시려고요?" "팬티를 만들 거야." "......네?" 나모리노는 제 귀를 의심했다. 지구의 경제를 구원할, 여신의 신력을 쏟아부을 신성한 아이템이 고작... 팬티? "왜? 속옷이 편해야 지갑을 열 마음도 생기는 법이라고! 그리고 이왕이면 예쁜 게 좋잖아? 어차피 여신의 권능을 담으려면 평범한 물건으론 안 돼. 인간의 가장 은밀한 곳, 생명의 근원과 맞닿은 곳이어야만 해." 샹드리아는 망설임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천계의 누에가 100년에 한 번 뽑아낸다는, 칼로도 찢을 수 없는 에테르 실크를 재단했다. 어떤 오물도 묻지 않는 정화의 룬을 금실로 자수 놓았다. 착용자의 체온을 항상 최적으로 유지하는 항상성의 마법을 레이스 끝단에 부여했다. 캉! 캉! 캉! 신성한 망치질 소리가 드레스룸을 울렸다. 모루 위에 놓인 하얀 천 조각은 점점 신비로운 핑크빛 광채를 뿜어냈다. 단순한 속옷이 아니었다. 이것은 샹드리아의 신력 20%가 고스란히 녹아든, 우주에서 가장 비싸고 위험하며, 동시에 가장 변태적인 팬티였다. [제작 완료] [등급: 신화(Myth)] [옵션 1: 절대 파괴 불가] [옵션 2: 착용자 절대 보호 (물리/마법 면역)] [히든 옵션: 수명-현금 교환 시스템 접속 권한]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팬티 한 장이 완성되었다. 순백의 실크 위에 금사로 샹드리아의 문장인 '지갑과 하이힐'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샹드리아는 완성된 팬티를 들어 올리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해. 이걸 입는 인간은 천하무적이 될 거야. 총알도 튕겨낼걸?" "그... 그걸 누가 입습니까?" "누구긴. 내 물건을 제일 잘 팔아줄 것 같은 인간이지." 그녀의 눈동자가 지구를 향해 번뜩였다. 수십억의 인간 중, 이 황당하고도 위대한 아이템을 감당할 수 있는 '대리인'을 찾기 위해서. 그녀의 시선이 서울의 어느 옥탑방, 식은 삼각김밥을 꾸역꾸역 먹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좌절을 모르는 한 여자에게 꽂혔다. "찾았다. 내 물건을 팔아줄 똑똑하고 예쁜 호구." 샹드리아가 팬티를 지구로 던졌다. 슈우웅-. 황금빛 유성이 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스템: 아이템 '여신의 란제리'가 배송을 시작합니다.] [수령인: 오유리] [배송 예정 시간: 3초 전]
작품 정보
〈여신의 란제리〉는 달빛왈츠 작가의 현대판타지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6년 2월 19일이다.2026년 10월 16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19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