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우리가 스쳐 지나간 자리 1권 – 디시에서 다시 만나다》**는 단기 알바에서 인연이 된 두 남녀가 ‘현실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익명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서로의 존재를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디시 특유의 댓글 문화, 아이피 대역, 서로를 향한 암호 같은 글들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현실성과 감성을 동시에 담은 소설입니다. 1장. 페스티벌의 첫날 부산 해변가 옆 공터에, 임시로 세워진 흰색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머리 위로 매달린 형형색색 조명이 낮에는 그저 플라스틱 덩어리 같았지만, 해가 지면 사람들의 얼굴을 다르게 만들어줄 거라는 걸, 지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야, 저기 검정 조끼 입은 사람들 줄 좀 세워줘요!” 스태프 조끼를 입은 팀장 누나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소리쳤다. 지훈은 반사적으로 “네!” 하고 대답하고 뛰어갔다. 아직 정식 직장도 없는 스물다섯, 이력이랍시고 적을 수 있는 건 군대 전역과 편의점 알바 몇 달. 이번 페스티벌 스태프 일은 그가 최근 한 것 중 가장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화려한’ 일이었다. ‘뭐, 시급만 잘 들어오면 된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닷바람 때문에 괜히 기분은 설렜다. 음악 장비를 실은 트럭들이 오고 가고, 가게 부스를 꾸미는 사람들, 푸드트럭 주인들, 어수선한 혼란 속에서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휴대폰 화면을 한 번 확인했다. 아무 알림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 조끼 자락을 툭 잡아당겼다. “저… 여기 스태프 맞으세요?” 조심스러운 목소리. 지훈이 고개를 돌리자, 회색 후드집업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서 있었다. 눈에 띄게 예쁘다,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시선이 한번 갔다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눈매가 약간 아래로 처져 있어서인지, 말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미안해요’라고 말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아, 네. 스태프 맞아요. 뭐 필요하세요?” “저 오늘부터 알바라서… 어디로 가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본부 텐트가 여기 맞아요?” 여자가 오른손에 구겨진 종이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페스티벌 스태프 공지’라는 제목과 함께, 부스 배치도와 조 편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훈이 황급히 종이를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어… 아, 우리 조네요. A-3 스태프 팀. 본부 옆 무대 쪽 맡는 팀인데… 저랑 같은 조예요.” “아, 진짜요? 다행이다…” 여자의 어깨가 조금 내려가며 긴장이 풀리는 게 눈에 보였다. 지훈은 그게 이상하게 귀엽다고 느꼈다. “저, 그럼 저도 거기로 같이 가면 되나요?” “네. 저 따라오세요. 어차피 저도 지금 거기 가는 중이었어요.” 지훈은 그렇게 말하고, 본부 텐트 뒤편으로 난 길을 가볍게 앞장섰다. 뒤에서 나는 발소리가, 다른 사람들 발소리와 섞여 버릴 만큼 작았지만, 왠지 신경이 계속 뒤로 갔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지훈이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물었다. “아… 저 은재요. 박은재.” “저는 김지훈이요. 오늘부터 같이 뺑이 치겠네요.” 은재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뺑이라니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근데 저, 이런 거 처음이라 너무 긴장돼요. 사람 많잖아요.” “괜찮아요. 어차피 정신없이 바빠서 긴장할 틈도 없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뛰다 보면 끝나요.” 지훈은 말하면서도, 자기가 아무렇지 않은 척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자신도 이런 대형 행사 스태프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무대 옆 A-3 구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몇 명이 모여 있었다. 팀장은 사람들을 대충 둘러보고 출석을 체크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나흘 동안 같이 일할 사람들입니다. 서로 얼굴 익혀 두시고요. 혹시 알바 이전에 해본 분?” 두어 명이 손을 들었다. 지훈은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 내렸다. 이전에 편의점이랑 카페는 해봤지만, 굳이 말해서 득 될 게 없을 것 같았다. “처음인 분도 괜찮아요. 우리 일은 크게 어렵진 않아요. 사람 줄 세우고, 안내하고, 쓰레기 좀 정리하고, 부스 앞 관리하고… 대신 표정관리 잘 해야 돼요. 이해했죠?” “네—” 사람들의 대답이 들쭉날쭉 섞였다. “아, 그리고… 오늘 A-3 팀은 둘씩 짝 지어서 구역 담당할 거예요. 자, 이쪽은 지훈 씨… 그 옆에… 은재 씨?” “네.” 은재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분이 3번 게이트랑 푸드존 입구 쪽 맡아요. 서로 챙겨주고. 알겠죠?” 지훈은 순간 눈이 마주친 은재에게 짧게 웃으며 말했다. “파트너네요.” 은재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닷바람이 다시 한 번 불어와, 천막 구석의 종이들이 부스럭 소리를 냈다. 하얀 텐트 천 사이로 쏟아지는 오후 햇빛이, 둘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지훈은 그때까지도 몰랐다. 이 나흘짜리 단기 알바가, 그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시간 중 하나가 될 거라는 걸.
작품 정보
〈우리가 스쳐 지나간 자리 1권〉은 감성공작소 작가의 로맨스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연재 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5년 11월 16일이다.2026년 10월 16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8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