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끝이었다. 삶의 끝은 생각과 달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평생 느끼지 못한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나란 존재를 감싸는 느낌과 함께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무거운 짐들은 모두 내려놓는 듯 안락한 느낌이 인간으로써 마지막이었다. 평생 머리속에 때때로 울리던 소음이 사라진 적막은 근사했다. 나름 자신에게 부여된 인생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한 황홀한 최후의 선물과 같았다. '아, 끝이구나. 행복한 삶이었, 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대신 이정도면 적어도 행복한 죽음이구나.' "저는 불멸자입니다. 인간이 아님을 그대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겠죠. 그대는 잘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지겹도록 들어보셨죠? 칼 날을 쥐었을 때나 그 대척점에 섰을 때나 한결 같았습니다. 비결이 궁금하네요. 한 가지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바쁘실텐데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저는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놀랍도록 빠르게 대답이 나왔다. "갑작스러우실테니 조금 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급할 것이 없으니 생각해보세요." "저는 정말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희고 넓은 소매자락이 입을 막았다. "인간인 이상 선인이든 악인이든 바라는 바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정신병자가 해도 바라는 바는 있게 마련이고요." 강하게 때리고 몰아부치면 오히려 죽어도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인간임을 죽기 전 일생을 보며 확인했기에 초조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사라졌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자가 온전한 자보다 더 많을 지경인 세계에 속했으면서 보기 드물게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도 내가 방문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인생을 마무리한 존재는 많지 않지. 그래도 첫 임무라고 신경 써주긴 했군.' * 모든 것이 있지만 시계만은 없어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상대의 얼굴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본 적 없는 최고급 호텔에서의 생활이 이러할까 싶게 안락하고 편안해서 일까 속에 있는 말이 다 나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곤란하실 것 같습니다. 죽은 이후라 그런지 정말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숨김이 없이 입 밖에 내게 되는데 저는 정말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첫임무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제일 쉽고 순하고 무난한 자를 골랐, 아니 맡았다고 생각했거늘!' 긴 시간을 주고 친어머니가 자식에게 하듯 자상하고 여유롭게 어르고 달래 계속 꾀어내어도 그저 미소를 지으며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다는 듯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그대가 사람인 이상 바라는 바가 없을 리가요." 처음과 달리 차갑고 무정한 얼굴로 선언하듯 말했다. 이 곳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본인뿐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역시, 그럼 그렇지. 봐주는 것은 여기까지라는 것이구나. 거짓말이라도 하라고 하려나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내려 버리려나.' 두 손으로 입을 꼭 막았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고 평생 자기 말에 책임지려하며 살아왔지만 이곳에서의 말은 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서늘한 눈빛이 이미 죽은 자신을 다시 죽일 것 같았기에 더욱 입을 막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신이 일생 행한 나쁜 일과 좋은 일을 모두 계산하여 제가 이 곳에 왔는데 당신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비겁하게도망만 치는 군요. 제 시간을 빼앗는 만큼 다른 이들이 곤란해질 겁니다." "마지막 자비를 베풀겠습니다. 당신은 꿈도 꾸지 못한 귀한 술을 드릴테니 마시고 그 값으로 솔직한 마음을 내놓으세요." 너무 꽉 누른 끝에 숨이 막혔다. 숨을 쉴 필요가 없을 망자임에도 숨이 막힌다는 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뜨겁고 무거운 기운 때문일지도 몰랐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일생 제 의지로 마신 바가 없습니다." 진실을 토해내고 다시 입을 막았다. 조금 살 것 같았다. "제가 손수 먹여드리지요." 뜨겁고 차갑고 향기로운 것이 눈으로 코로 입으로 들어왔다.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환한 얼굴에 살벌할 정도로 화려한 미소를 띄우고서는 술을 머리 위에 붓고 있었다. "이 술 덕분에 당신을 만났는데, 다시 당신 때문에 이 술을 쓰게 되네요." 애처러운 표정으로 술이 몹시 아깝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바라는 바를 말하세요. 고생하고 사셨던데 다음생은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으실까요?" "아니면 더 더 많은 이들에게 베풀고 살고 싶으신가요? 많이 베풀어 저처럼 귀한 존재가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당신이 저를 곤란하게 했지만 꽤 마음에 들어요. 이제껏 당신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그러했듯! 당신은 같이 일하기 제법 좋은 사람이니까요." 머리가 어지럽게 폭풍이 쳤다. 너무 지독하게 달고 향기로웠다. 온 몸으로 정신으로 술을 마신 것만 같아 꽃의 폭풍 속에 휘말린 것만 같았다. 정신이 녹아내리는 듯 황홀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럴때일수록 정신을 잡아야 하는 것 같은데.' "하하하하하하하! 그대로 베풀어주마. 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지!" "정신줄을 놓아버렸나 보네."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아니, 모든 것이 시작해버렸다.
작품 정보
〈대환생시대〉는 송구영 작가의 퓨전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연재 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3년 8월 5일이다.2026년 10월 16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1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