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사람을 죽였다. 죽인 건 5년이나 사귀고, 결혼까지 약속한 내 애인 혜경이.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은 정신이 나갈만큼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들었고, 그런 때 무의식적으로 찾아간 건, 고등학교 동창이자 현직 변호사인 김현민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나도 믿기지 않은 내 얘기를 듣더니 차 뒷자석에 세 개의 검은 봉지를 싣고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을 혜경이라고 말한다. <본문 미리보기> ...... “진아, 씻자.” 아까까지의 망설이던 모습이 사라진 김현민은 이미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녀석이 수도꼭지를 열었다. 후끈한 김을 뿜는 뜨거운 물이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내 시선은 녀석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등에 붙어있는 상처에 놀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길게 이어는 상처. 날카로운 무언가에 깊게 베인 상처. 어쩌면 목숨이 위험했을지도 모를 만큼, 큰 상처였다. 눈이 퍽퍽하고 목이 멨다. 입술을 악물었다. 미안하다. 몰라서, 알아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 김현민.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은 거냐.” “선생들조차 알면서도 외면했는걸. 그땐 혼자 견디는 것, 그게 최선이었어.” 녀석은 내게 등을 보인 채 태연히 중얼 거렸다. 문득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상처가 나아도, 흉터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은 채 이렇게 남아있는데. 괜찮을 리가 없는데도 괜찮다고 말하는 녀석을 보고 있기 짜증났다. 나도 모르게 어깨에서 시작되는 녀석의 상처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허리까지 이어져 있는 상처를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트렸다. 조금 떨리는 손끝으로 생동감 있게 움찔 거리는 녀석의 등 근육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서…, 죽인 거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김현민. 넌 이 상처들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래서 그 놈들을 죽인 거냐. 너의 몸에 그런 상처를 남긴 놈들을 찾아다가, 절대로 널 의심하지 못할 방법으로 철저하게 죽인 거냐. “누구를?” 그렇게 물으며 녀석은 웃었다. 짙은 눈썹 아래 둥근 눈꼬리를 반으로 접고서, 우물쭈물 하고 있는 날 보며 웃었다. 갑자기 뱃속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뜨거운 물줄기 때문에 욕실 안은 후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얼음 덩어리로 문지른 것처럼 뒷덜미가 오싹해졌다. “내가 누구를 죽였다는 거야, 진아?” 웃으면서 상냥하게 묻는 얼굴에 어째선지 저절로 다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머리가, 쿵쿵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두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솨아아,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온수에 젖은 발끝이 뜨거웠다. 수증기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다. 녀석의 하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말해 봐, 진아.” 상냥하게 웃으며 재촉하는 말에 저절로 입이 움직였다. “하, 한영주 패거리들.” 목소리가 듣기 싫게 뒤집어졌다. 숨이 막혔다. 녀석이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네가 그 놈들의 장례식에 전부……, 참석한 이유.” 쿵쿵쿵, 심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뛰었다. 꼭 심장이 귓속에 들어차기라도 한 것처럼 요란했다. 김현민은 노란 욕실 등 불빛을 반사하며 검은 눈을 더욱 새카맣게 빛냈다. 천천히 느릿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약해빠져 보일만큼 선한 얼굴이었지만 그 아래의 상처투성이 몸은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당장이라도 내 목줄기를 낚아챌 것만 같은 느낌에 녀석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등 뒤에 욕실 벽 차가운 타일이 닿았다. 뜨거운 공기와 달리 서늘하고 차가운 감촉에 찌르르 오한이 온 몸을 달렸다. 얕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다섯 놈들의 장례식에 전부 갈 수 있었던 건, 네가 그 놈들을 죽여서잖아.” 그래서 언제 어디서 장례식이 열리는지 다 알 수 있었던 거고, 그 놈들의 죽음을 확인하며 복수를 완성했던 거잖아. 김현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앞까지 다가와 미동조차 없이 조용히, 그저 까만 눈으로 날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새카만 눈, 그것이 꼭 먹이를 발견하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준비를 마친 파충류의 그것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던 때였다. 김현민이 땅 아래에서 울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중략-
작품 정보
〈늪〉은 진소민jsomin 작가의 BL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1년 6월 7일이다.2026년 10월 17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75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