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이리 오라니까." 뒤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자신을 따라붙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데, 발엔 마치 누군가 풀이라도 붙여 놔서 한 발자국 떼기도 힘든 기분이었다. '제발 누가 좀....!' 살려줘. 이 징그러운 것 좀 없애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삼키며 어두운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심장이 연의 움직임을 감당 못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직전. "도와줄까?" 어둠속에서 들려온 청량한 목소리가 지친 정신을 깨웠다. 겁에 질려 물기를 머금은 커다란 눈은 자연히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했다. 보이지도 않는 어둠속 커다란 검을 등에진 그 남자가 있었다. 마치 그에게만 빛이 내리쬐는 것처럼 이 어둠속에서도 그만이 빛이났다. 그리고 아주 잠깐. 모든 것이 멈추 듯, 세상이 그림 속에 갇힌 것 같았다. 한 발자국 떼는 남자의 움직임에 정지했던 장면이 다시 흐르고, 계속해서 날아드는 겨울 바람이 그의 짙은 흑발을 부드럽게 스쳤다. 검은 천의 옷과 검은 죽립까지 걸치고 서 있던 남자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정말 당장이라도 그녀를 구해 줄 최상위 맹수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게로." 여유롭게 떨어진 입술이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구해줄게." 이판사판. 연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발이 땅에 붙은 듯 무거웠지만, 필사의 힘까지 다해 내달렸다. 등 뒤로 화가 난 물체의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킬 듯 가까워지는게 느껴졌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있는 힘껏 그에게 다가 갔다. 남자의 품에 안기는 찰나가 실처럼 가늘게 늘어지더니 곧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과광. 커다란 바위가 모래처럼 부서지는 소리와 함게 그녀의 뒤를 쫓던 존재가 사라졌다. "...........!" 한 순간에 소리와 기척이 사라진, 그야말로 완벽한 정적 속.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조막만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귓가에 섬뜩하게 속삭였다. "너의 붉은 눈이 필요해." 연의 눈 앞에 금빛 물든 그의 검은색 눈동자가 고요히 빛났다. 붉은 입꼬리가 위로간 동시에. "허억!" 그녀는 비명 같은 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방으로 이동해 있었다. 오늘도 살아냈다는 사실을 깨닫자 목을 조르던 것만 같던 답답함이 사라지며,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두손으로 감싸 쥐며, 그대로 벽에 기대 미끄러져 내렸다. 문득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며칠전 부터 자신을 구해주던 남자였다. '이리와 내가 구해줄게.' 연은 당연한 것처럼 두려움에 떨며 그 남자를 향해 달려 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군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도, 징그러운 괴물에게서 벗어나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까웠으니까. '너의 붉은 눈이 필요해.' 하지만. 그 역시 다른 괴물들처럼 아찔하게 속삭인다. ..............그도 자신을 쫓는 괴물과 같은 존재 일까? 하아. 연의 기억이 남자의 정체를 상세히 더듬기 시작했다. 그가 죽립을 쓰고 있었음에도 남자의 얼굴이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해졌다. 그가 바글바글한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하더라도 단숨에 그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그는 잊기 어려운 남자였다. 칠흑 같은 흑발에 여름 날 핀 메밀 꽃처럼 하얀 피부. 그리고 그 위에 떨어진 한 떨기 붉은 동백꽃처럼 혈색 좋은 입술. 그는 마치 지옥에서라도 온 사람처럼 신비로웠지만, 서늘하고 기묘했다. 검은 어둠에 노르스름한 달빛이 맺힌 것 같은 눈은 밤을 닮아 신비로웠고, 그 묘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외모는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농축시킨 것 같았다. 남자는 몇번이나 괴물들 사이에서 그녀를 구해줬지만,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이상하게도 자신을 위협하는 괴물인지 구원자인지 경계가 모호 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연에게 있어 그 남자는 오히려 자신을 망칠 수도 있는 잠깐의 구원자와도 같았다.
작품 정보
〈나의 구원자.〉는 한강공원 작가의 판타지 웹소설이다.
조아라에서 연재 중이다.
연재 시작은 조아라 2022년 9월 6일이다.2026년 10월 16일 기준 연재 회차는 조아라 9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