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이렇게 낯설게 굴지.” 재킷 안을 뒤적이던 남자의 손에 담뱃갑이 딸려 나왔다. 매끈한 검지로 바닥을 툭, 치자 궐련이 한 대 밀려 나온다. “구질구질해지기 싫어서 나랑 자고 싶었다며.” 고주원이 여태 자신을 질려 하지 않고 계속 관계를 가지는 이유는 명확했다. 침대 위에서 그저 쾌락에만 몰두하는 것. “그래서 즐겁게 놀아 줬고. 지금도 충분히 그러는 중인데.” “…….” “뭐가 문제야.” 이솜은 3년째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중이었다. 적어도 고주원에게 자신은 그런 여자로 비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괜히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닿지 못할 진심. 어쩌면 닿아선 안 될 진심.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제 마음을 눈치챘으면 이 관계는 진즉에 종국을 맞이했을 테니. “그까짓 게 거슬렸으면 나랑 엮일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지.” 담배를 입에 지그시 문 남자의 얼굴 위로 익숙한 감정이 묻어났다. 싫증 나기 직전의 권태와 무료. “걱정 마. 흥 식으면 끝낼 테니까.” 이솜은 새삼 깨달았다. 이 관계는 원점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그러니 이제는 선택해야 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15세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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