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믿지 않아도 실존하며, 없는 것 취급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미신을 믿지 않던 무당집 손주 권이현은 어느 날 평범했던 일상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재해와 마주친다. 재앙신. 괴력난신 이매망량 모두가 받들어 모시는 악의 구주이자 부정의 화신. “좋은 꿈 꿨어?” 재앙신은 어째서인지 권이현만을 원했다. 권이현은 그를 원하지 않는데도. 가족들을 살리고, 자신도 살아남기 위하여 권이현은 만물이 두려워하는 재앙신과 혼례식을 올리고, 여태껏 오컬트로 취급했던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게 되는데……. 21세기를 맞이하여 현대화가 이루어진 명계, ㈜ 저승 컴퍼니의 저승차사가 되어 살아가기로 한 권이현. 그는 스스로 바라마지 않았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재앙신은……. “이유가 있으면, 뭐가 달라지지……?” 불가해하고 혐오스러운 그 존재는 “이제 깨어나야 할 시간이야.” 왜, 권이현을 원할까? [본문 중에서] “……당신은 어째서 재앙신이라고 불리는 건가요? 무슨 이유에서요?” 권이현은 호명을 꺼리는 스스로에 놀랐다. 차차라는 이름마저 입안에서 까끌까끌한 감촉을 남기고 있었다. 앞으로는 차차를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으면서, 어째서 거부감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가 있으면, 뭐가 달라지지……?” 차차는 모호하고 이상스럽게 답변했다. 권이현은 그 답변에 모든 진실이 깃들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하지만 어떤 것도 언어화할 수 없었다. 권이현이 가진 단서는 너무 미흡하고 진실은 너무 커다랬다. 짜맞출래야 짜맞출 수 없을 만큼. 그래도 권이현은 이것만은 알고 있었다. “모든 게 달라져요.” 만약 재앙신에게 이유가 있다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는 것 하나만큼은. “다행이구나.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야.” 지독히 초연한 낯, 수상한 듯 날 선 미소. 차차는 오늘도 웃을 뿐이다. 언제나처럼 핏기 없는 창백한 낯으로 저녁놀을 한껏 받아들이며. 핏빛 입술을 비스듬히 당길 뿐이다. 그런데도 권이현은 언제나와 같은 얼굴에서 다른 점을 발견해냈다. ‘아무것도 아니면,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이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권이현이 그동안 차차를 집요하게 관찰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기억나지 않는 머릿속 어딘가에 ‘이 표정’을 보고 말았던 순간이, 숨어 있는 것일까? 왜 차차가 재앙신이 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묻는 거다. ‘그걸 알게 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 때아닌 때 피어오르는 몽글몽글한 감정. 감성적인 노을. 벅차오르는 걸음. 물거품 같은 감정. 사랑이라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웃고 있다. “하하…….” 권이현은 이 모든 게 차라리 꿈이길 바라기 시작했다. 꿈이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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