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윈저엔 말야. 천상계랑 지상계가 있어. 일단 천상계 꼭대기에 일짱이 있고, 그 일짱은…… 주님이지.” 전직 태권도 메달리스트이나 현재는 일용직을 전전하는 서채현은, 다리를 다친 보육원 친구를 대신해 임시로 클럽 ‘윈저’의 가드로 일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채현은 제 인생이 완전히 뒤집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클럽에 적응을 해 가던 어느 날, 서채현은 사수 김문현의 부탁을 받고 ‘VIP 배달’을 하러 갔다가 사고를 치고 그날로 소문의 ‘주님’, 주하정을 만나게 된다. 주하정은 사고의 경위를 따져가며 관련자들을 하나씩 족치고, 그중 김문현은 손수 목을 조르며 서채현에게 묻는다. “어떻게, 이것도 살려?” 살릴 수 있으면 살려 보라는 도발에, 서채현은 본능적으로 김문현의 목을 조르는 주하정의 손목을 돌려찼다. . . . “저기야. 근데 이건 어쩔래?” 주하정이 깁스한 손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서채현이 대신 아플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었다. 그럴 수 없으니 막막할 뿐이었다. “그건…… 제가 갚을.” “어떻게?” “일단 어떻게든.” “뭐, 몸으로라도 갚게? 손이 이따위라 밥도 못 먹고 딸도 못 치는데 그런 거 다 니가 계산해서 피해 보상해 주나?” 서채현은 주하정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흥미롭게 내려 보는 눈빛이 먹잇감을 보는 포식자와 같았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거란 예감, 그 후엔 아득한 무력감이 서채현의 가슴에 밀려왔다. “그냥.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다?” “할 수 있는 건, 요.” *본 도서는 작가의 전작 <밝지 않는 밤은 없다>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전작을 읽지 않아도 감상에 무리가 없습니다. * 본문발췌 “그냥 내 목을 날리지 그랬냐고. 응?” 집무실 문이 열려 있어서인지 순식간에 집무실 공기가 싸늘해졌다. 감히 주하정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니. 김문현을 끌고 나가는 것을 감독하느라 집무실 문을 잡고 서 있던 조일현이 십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김문현을 끌고 나가자, 사방이 너무 조용해져서 서채현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조일현에게까지 적나라하게 들릴 정도였다. “너 지금 사는 것도 허덕허덕이잖아? 씨발, 이 깽값은 어떻게 갚을려고.” 그런 주하정의 얼굴을 보는 서채현의 얼굴에 막막함만 가득했다. 그럼에도 공포는 비치지 않는다. 그저 체념한 듯한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보통 이 정도면 벌벌 떨며 살려 달라고 빌어야 정상이었다. 진짜. 재밌네. 이 새끼. 주하정은 다친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고정하듯 꾹 잡았다. 부어오른 손목은 잡는 대로 손자국이 났다. “왜. 사는 게 지긋지긋한 참에 내 손에 죽으면 편하겠다 싶어?” “그건…….” “싫은데. 누구 맘대로.” 확실히 두고 보는 재미가 있겠어. 중얼거리며 주하정은 웃었다. 서채현은 그 잔잔한 웃음을 보고 “우리 주님은 그냥 인간적인 따뜻함. 뭐 그런 감정이 없다니까. 그냥 악마 같은 거야.” 하던 말을 떠올렸다. “일단 시험 삼아 한 대 맞아 봐. 니가 해먹은 오른손보단 못하겠지만 왼손도 나쁘진 않아. 운 좋으면 원하는 대로 뒤질 수도. 난 선의 같은 거 모르니까.” “네?” 주하정은 웃으며 서채현의 관자놀이 부분에 주먹을 날렸다. 훅- 하고 묵직한 것이 공중에 날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프다는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며 서채현은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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