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1 /그 사내/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준비된 조선의 왕이었다. 미처 왕이 되지 못하고 요절한 내 아버지와 왕비의 자리를 코앞에서 놓쳐 버리고 잠저로 내쳐져 다시 대비가 되기를 꿈꾸었던 내 어머니의 비운의 운명도, 왕위를 놓고 다투었던 정적들의 공격과 그 수많은 정쟁들도, 이미 조선의 왕이 되리라 결심한 나의 운명을 바꿔 놓을 순 없었다. 나에게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정략적으로 혼인을 올렸다가 몇 해 전에 죽은 왕비가 있었고, 서너 명의 후궁도 있는 데다가 손만 뻗으면 안겨 올 궁녀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여인일 뿐, 내게는 나를 지키는 운검보다 의미가 없다. 조선의 왕이 왕답게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고, 경연에 참석해 호시탐탐 젊은 왕의 지식과 정치적 견해를 깔아뭉개고자 하는 신하들과 학문과 정치 토론을 해야 하고, 조회에 참석해서는 국정을 논의하고, 조참에서는 어찌하면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가질까 노리는 그들의 야욕을 차단하기 위해 애써야 하며, 정적과 우호 세력을 차례로 불러들여 정치를 논의해야 하는 윤대까지……, 하루하루가 잘 벼려진 칼날 위를 달리는 것과 같이 숨 돌릴 틈 없이 위태롭고 살벌하다. 늘 겸손하게 익히고 배우며, 자신 있게 이끌고, 거침없이 앞서 가는 개혁 군주가 되고자 하는 조선의 왕인 나에게도 어찌 못 할 무엇이 생겼다. #2 /그 여인/ 나는 조선 사대부가, 그것도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좌의정의 여식입니다. 조선의 여인은 그저 누군가의 여식이며, 누군가의 안해이며, 그리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갈 뿐, 그 무엇도 아닙니다. 나에게는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아버님들끼리 술자리에서 약조한 정혼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나의 정혼자는 지금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버지와 우의정인 정혼자의 아버지는 공신 세력의 단합을 위해 이 혼인을 강행하려 합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우의정의 집안에서 사주단자가 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청실홍실 수를 놓은 활옷 대신, 새하얀 소복을 입은 채 죽은 정혼자의 위폐를 앞에 놓고 혼례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정숙한 사대부가의 여인으로 필요한 모든 규방 교육을 받아 왔으며, 어려서부터 글 스승님께 신동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묵향을 좋아해 오라버니와 앉아 시를 짓고 난을 치는 것이 내가 아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나는 곧 우의정 댁에 열녀문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자진해 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나는 우의정 집안에서 사주단자가 오기 전에 죽을 것입니다. 죽기로 결심하니 모든 것이 무심합니다. 대체 세상의 그 많은 여인과 사내들은 어찌 살아가고 있나요.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사랑받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나는 그 무엇도 알지 못하고 이제 죽으려 합니다.
작품 정보
〈조선풍류〉는 이혜경 작가의 로맨스 웹소설이다.
미스터블루·원스토리에서 볼 수 있는 완결작이며 출판사는 러브홀릭이다.
최근 7일(10/21~10/27) 조회수는 미스터블루 3 늘어 누적 715였다.
평점은 원스토리 1.0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