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흐드러지는 꽃비가 낭만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온 사방을 채우는 계절. 태언은 폐허가 된 쪽방촌 골목에서 온몸이 멍투성이인 열일곱 살 소년, 아현을 주웠다. 17년 전 조직을 떠났던 보스의 연인, ‘복희’의 얼굴을 꼭 닮은 말간 낯의 소년은 무구하게 아름다운 만큼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위태로웠다. 냉랭하기 그지없던 사내 태언은 유독 그 어리고 순진한 아이에게만 자꾸 무르게 굴었다. “아현이, 아저씨랑 같이 살까?” 그 말 한마디에 아현은 주저없이 태언의 품에 뛰어들었고, 무채색이었던 두 사람의 계절은 하루가 다르게 선명한 빛깔로 물든다. “제 소원은요. 아저씨가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안아주지 않는 거예요.” “왜, 서운해서?” “…제가 아저씨를 너무 많이 좋아해서요.” 아현의 키가 한 뼘씩 자랄수록 태언에 대한 마음이 몇 배씩 자라난다. 그러나 태언은 서툰 고백을 귀여운 어리광으로 치부하며 쉽사리 받아주지 않는데……. 어느 순간 태언은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았던 건 티 없이 맑은 이 소년이 아니라, 아현이 연기처럼 사라질까 가슴 졸였던 그 모든 계절이었음을. 일러스트ⓒ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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