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1화 / “하~암.” / 공원 벤치에서 느긋하게 자던 남자가 기지개를 펴며 눈을 떴다. / 이강운, 26세. 공무원 지망생. / 이런 데서 대낮부터 자고 있던 이유는 이번 시험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 ‘이제 돈도 다 떨어졌는데.’ / 균열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한지도 7년. /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복수라곤 헌터들을 뒤에서 돕는 것뿐이었고 그를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 헌터협회의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 하지만 괴수학 공부가 부족해선지, 각성하지 못해선지 몰라도 또 1차에서 떨어진 것이다. / 아마 둘 다겠지. / “유산도 공부한답시고 다 썼고… 헌터협회 공무원 자체가 허황된 꿈이었던 걸까.” / 적어도 각성해 헌터가 되는 것보단 현실적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 쓸쓸한 뒷말을 삼키며 집에 가려고 일어나는 찰나,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 ‘식초? 잠깐, 그것보다.’ /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 아무리 평일 대낮이라 해도 아무도 없는 건 불가능하다. / 뭐가 어떻게 된 거지? / 그때, 5년간의 괴수학 공부로 다져진 이성이 한 가지 가능성을 도출했다. / “설마... 비관측 균열?” / 비관측 균열이란 말 그대로 균열 관측기에 잡히지 않는 균열. / 따라서 미리 경보를 내릴 수도, 내부의 괴수를 알아낼 수도 없다. / 하지만 가장 위험한 점은, 일정 기간이 지나야 괴수가 튀어나오는 일반 균열들과 달리 생성되자마자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 상황파악이 끝난 강운은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 그의 현재 위치는 공원 외곽의 놀이터 벤치! / 그러나 그가 향한 곳은 공원 출구가 아닌 근처 꽃밭이었다. / ‘최하급 괴수조차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데,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건 자살이나 다름없지.’ / 강운은 꽃밭을 파내 몸에 흙을 마구 묻혔다. / 머리부터 구두까지 흙투성이가 돼 돌아온 곳은 놀이터의 2층, 누가 본다면 너무 대담한 게 아니냐 했겠지만 강운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 그것은 처음부터 났던 식초 냄새. / 사람들이 도망치면서 단체로 식초를 뿌리고 갔을 리는 없으니 답은 하나였다. / ‘나온 괴물은 동굴 고블린이다.’ / 동굴 고블린의 체취엔 특수한 성분이 들어있어 식초와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시각이 퇴화하고 청각과 후각이 발달. / 그렇다면 이 행동이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 밝혀진 것에 따르면 동굴 고블린의 시력은 0.1 이하. / 강운은 조심스레 난간의 틈 사이로 방금까지 있던 꽃밭을 살폈다. / 놀랍게도 방금까지 있던 자리엔 흉측한 괴수가 있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특이한 발걸음부터 회갈색 피부까지 전부 동굴 고블린의 이미지와 일치했다. / 지금까지의 공부가 그저 헛되진 않았던 것이다. / 이제 남은 것은 쥐죽은 듯 숨어서 헌터들의 구조를 기다리는 것 뿐. / 소리가 날까 속으로만 한숨을 쉬었을 때, 주머니에서 불길한 진동이 느껴졌다. / 위-잉. / [김우성: 붙었냐?] / 아니다, 이 악마야! / 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동굴 고블린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모습. / 강운은 적어도 ‘착각인가’ 하고 넘어가진 않을 거라 확신했다. / “X발...” / 위기가 닥치면 결단은 빠르게! / 강운은 메시지 옆에 붙어있는 통화 버튼을 누른 후 스피커폰 모드로 바꿔 입구 반대편으로 던졌다. / 띠리리리! 띠리리리! /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울려 퍼지는 통화 대기음. / 그러나 동굴 고블린은 아직 내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 본능적으로 저것이 생물의 소리가 아니란 걸 알아챈 것이다. / 하지만 그러한 본능에는 한계가 있는 법. / [어, 야! 진짜 붙었냐?] / 핸드폰에서 인간의 음성이 들리자, 크와아아아앙! / 미친 듯이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 ‘지금이다!’ / 강운은 즉시 난간에서 뛰어내려 입구로 달려갔다. / 입구를 지나치자 곧이어 들려오는 동굴 고블린의 화난 울음소리. / 내가 이런데서 죽으려고 5년 동안 버틴 줄 알아! / 강운은 모든 힘과 의지를 쥐어짜내 뛰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 뒤이어 쫓아온 동굴 고블린의 주먹이 등을 강타한 것이다. / “크어어억!” / 그대로 아파트 담장을 부수고 날아간 강운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 “커헉...” 출혈로 붉은 시야가 핑 돌았다. / 형용할 수 없는 고통 또한 느껴졌다. / 그러나 그와 동시에, 편안한 느낌도 느껴졌다. / 진짜, 이게 죽는다는 것일까. / 뒤로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겨지는 순간, 붉은 세상 속에서 황금빛 꽃 한 송이가 보였다. / 이런 세상 속에서 자신만은 너의 편이라는 듯 눈부시게 강운을 비추는 금빛의 선율. / 자기도 모르게, 꽃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 / 크르르르륵? / 강운의 모습은 사라져있었다. / 2화 / “으윽....” / 정신을 차린 강운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나무로 된 천장이었다. / 여긴 누구고 나는 어딘가? / 잠시 멍을 때리며 낡은 목재를 쳐다보고 있자니, / 문득 방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 ‘맞아, 난 방금 동굴 고블린에게 공격당해서...!’ / 강운은 바로 일어나 동굴 고블린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으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 “@&#. %#*@&$@*.” / 그때 우측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말소리. / 고개조차 돌아가지 않아 눈동자를 굴리자, 동굴 고블린이 아닌 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 노인의 머리는 완전한 백발로 연륜이 느껴졌으며, 눈은 푸른색으로 그가 서양인임을 짐작하게 해줬다. / 그가 강운을 치료해준 것일까? / 자신의 몸에 둘둘 감긴 붕대 더미와 그 사이로 새어나온 핏자국을 확인한 강운은 다시 노인과 눈을 마주쳤다. / “$%@*%, $&@*? #^@.” / 노인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억양을 보니 어쩌다 그렇게 다쳤는지 묻는 듯 했다. / 강운은 영어로라도 감사를 전하려 했으나 발음이 새어나가 한 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 이빨까지 다 나간 모양이네. / 공무원 시험에 붙어 면접을 보게 되면 틀니라도 껴야 하려나. /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 노인이 다가와 강운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 뭘 하려는 거지? / “#&@% ^.” / 노인이 짧은 단어를 말하자 강운은 무얼 하려는 지 알 수 있었다. / 바로 노인의 손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이 할아버지, 힐러였던 건가?’ / 그렇다면 강운이 살아난 것도 이해가 간다. / 심한 상처였으니까. / 하지만 강운의 놀라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 샤아아-! 손에서 나온 빛이 본격적으로 상처에 스며들기 시작하자 언제 다쳤었냐는 듯 새살이 돋아나고 활력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 ‘이 정도 회복력...’ / “이라면 S급 힐러?!” / 헌터 등급은 SSS급까지 있었지만 S급부턴 국가 최상위 전력이나 다름없었다. / 게다가 수많은 직업 중에서도 귀족 취급받는 힐러라니? / 이런 분이 왜 여기서, 나를 치료하고 계신 것인가? / 강운이 경악한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았지만 노인은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 왜냐하면 노인이 더 놀랐기 때문이다! / “어... 어떻게 하급 힐에서 이런 위력이? 서, 설마?” / 노인은 강운의 손을 잡아채 흔들며 물었다. / “혹시, 허공에 글씨가 써진 유리창 같은 게 보이십니까...?” / 유리창? 강운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게임에 나올법한 고풍스런 홀로그램 창이 떠있었다. / {당신은 선택받았습니다!} / “이, 이건...!” / “예. 당신은...” / 노인과 나는 눈을 마주치고 환히 웃으며 외쳤다. / “각성했다!” / “용사로 선택받으신 겁니다!” / 응? / 뭔 소린가 싶어 노인을 바라보자 자기가 각성한 듯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걸 빼면 이상한 점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 그러다 내 시선을 끈 것은 노인 뒤의 창밖 풍경이었다. / 마치 중세를 연상시키는 작은 가옥들과 저 멀리 솟아있는 성. / 백번 양보해서 이런 건축물을 유지한 관광지에 있는 거라 쳐도, 한국에 저러한 성 따위는 없었다. / “사... 상태창.” / “아, 그 유리창을 불러내시려면 <스테이터스>라고 말하시면 됩니다.” / “스, 스테이터스?” / 내가 지금 뭐라 하는 거지? / 하지만 내 <상태창>과 달리 <스테이터스>엔 홀로그램이 반응했다. / {이강운} LV.1 HP:50/50 / MP:1/1 / 종족: 인간 클래스: 모험가(용사) / 능력치- 힘: 10 / 민첩: 10 / 체력: 10 방어력: 10 / 지력: 10 / 마력: 1 / 스킬- 통역(S), 모험가의 본능(C), 몬스터 도감(D) / 업적-N! [구사일생] /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 ‘이거, 내가 알던 상태창이 아니다.’ / 비록 남의 상태창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말로 들었지만 현대의 상태창은 하얀 배경에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이라고 했다. / 그런데 이건? / 파란색 배경에 깔끔함과는 담을 쌓은 디자인이 아닌가. / 게다가 능력치도. 방어력과 지력 스텟은 들어본 적도 없다. / 나름 헌터와 괴수에 대해 공부 좀 했는데 말이다! / 가뜩이나 들어본 적도 없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이번에는 강운의 몸이 발끝부터 황금빛 가루가 되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 그래도 강운은 당황하지 않았다. /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강운은 체념한 듯 얕은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 “이것도 선택받은 거랑 관련이 있는 거죠? 용사소환쯤 되려나.” / “드, 들어본 적도 없는뎁쇼... 요, 용사님이 아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 “시ㅂ.....!” / 쌍욕을 박을 틈도 없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시야. / 느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엄청난 압력을 받으며 또다시 정신을 잃은 강운의 앞에 떠오른 것은, [개체의 마나 감응력이 부족하나, 마나에 적응하였습니다.] / [조건 충족.] [당신은 각성하였습니다.] / 헌터로서의 각성을 알리는 홀로그램이었다. / 3화 / 강운이 정신을 차린 건 그로부터 하루 뒤였다. / 병원 간호사에 의하면 그날, 전국적으로 비관측 균열이 일어났다고 한다. / 비록 최하급이나 하급 균열이었지만 갑작스런 이상상황에 헌터들의 출동이 늦어졌다고. /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강운처럼 상처 하나 없이 구조된 사람은 소수였다고 한다. / 따지고 보면 강운은 전자였지만 이계에서의 경험을 말했다간 ‘아, 머리를 다치셨군요!’ 같이 반응할 것을 잘 아는 강운은 조용히 퇴원수속을 밟았다. / 집으로 돌아온 강운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 어제의 일은 환상일까? / 그럴 리 없다. / 동굴 고블린에게 겪은 고통은 꿈이라기엔 너무 끔찍했으니. / 게다가... / “스테이터스.” / {이강운} LV.1 / HP:50/50 / MP:1/1 / 종족: 인간 / 클래스: 모험가(용사) / 능력치- 힘: 10 / 민첩: 10 / 체력: 10 방어력: 10 / 지력: 10 / 마력: 1 / 스킬- 통역(S), 모험가의 본능(C), 몬스터 도감(D) / 업적- [구사일생] / 병원에서도 시험해봤지만 진짜로 된다. / 이게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 /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 바로 의식을 잃는 순간 보인 흰색 홀로그램들. / 그게 사실이라면...! / “상태창.” [플레이어 – 이강운] / [직업] 전사(1차) / [근력] 15 / [민첩] 12 / [체력] 14 / [마력] 2 / [스킬] <소드 마스터리>, <박살 베기> / 와우. ‘스테이터스’와 달리 바로 느낌이 왔다. / 이건 대박이라고, 그토록 갈망하던 헌터가 될 수 있다고! / 한편으론 걱정도 들었다. / 이 결과는 이계에서 선택인지 뭔지 받은 것과 관련이 있을 터. / 어떤 대가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좋아해도 되는 걸까? / 강운은 생각에 빠져들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48시간 안에 해야 하는 각성자 신고. / 어제 각성을 한 강운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택시를 잡았다. / “헌터 협회로 가주세요.” / “어이구, 손님 각성했나 봐요?” / “네! 운이 좋았죠.” / “각성자 손님은 1년 만에 태워보네. 혹시 등급이... 아, 이런 걸 묻는 건 실례죠?” / “원래는 실례인데, 전 지금 등록하러 가는 길입니다! 하하.” / “아! B급 C급 나오길 제가 빌어드리겠습니다. 허허.” /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목적지에 도착한 강운은 요금을 치룬 뒤 협회의 정문을 향했다. / B급이나 C급? 내가 역대급 재능충일리도 없고, 직업도 평범의 대명사인 전사. / 내가 기대하는 건 이 ‘스테이터스’다. / 검사 도중 이것의 정체가, 진가가 드러나지 않을까? / 잔뜩 기대하며 헌터 협회에 들어온 강운은 주민등록증과 간단한 각성 정보를 기입해 제출했다. / 헌터를 희망하냐는 항목에도 ‘예’를 골라서. / 곧이어 온 협회 공무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지하의 능력치 측정실. / 2명의 심사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근력 측정용 펀치머신 앞에서 자세를 잡은 강운이 떠올렸다. / ‘내 상태창에 표기된 근력은 15, 조금 높은 수준. / 그러나 스테이터스에 표기된 힘은 10이다.’ / 근력 15가 이계에선 힘 10이란 걸까? / 아니면... / “쳐보면 알겠지.” / 심사관이 알려준 대로, 주먹에 힘을 주며 어깨까지 끌어당긴 강운. / 숨을 들이마시고. / 퍼어억!!! /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전광판에 떠오른 그의, 강운의 근력 지수는. / [측정된 근력: 25] / 이건 대박, 아니 초대박이다! / 4화 / 이후의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을 피하는 민첩 측정에서도. / [측정된 민첩: 22] / 강철 추를 달고 머신을 달리는 체력 측정에서도. / [측정된 체력: 24] / 갓 각성한 신체라곤 믿기지 않는 수치가 나왔다. / [측정된 마력: 3] / 비록 마나 수정구로 측정한 마력은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처참한 수치였지만 이것도 상태창의 [마력] 2보단 높으니 패스. / 이 테스트로 상태창과 스테이터스에 표기된 능력치는 중복 적용된다는 엄청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 뒤를 슬쩍 돌아보니 심사관이 놀란 얼굴로 강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 테스트부터 두각을 드러내면 길드가 채가기 전에 심사관이 협회직을 제안한다던데, 그들은 그럴 생각까진 없어보였다. / ‘마력이 고작 3이니까. 끽해야 초반에나 강하다고 생각하겠지.’ / 균열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출현하는 괴수도 강해진다. / 상급 괴수는 근력이 100이라도 <오러 블레이드>, 흔히 검강이라 불리는 스킬이 없으면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 물론 <패왕극렬참>같은 사기 스킬을 써도 죽일 순 있겠지만, 그 모든 방법의 공통점은 마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그런 점에서 볼 때, 강운이란 존재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 심사관들도 그걸 알고 움직이지 않는 것. /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난 성장력도 2배인데.’ / 강운은 속으로 웃으며 스킬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 그가 보유한 스킬은 <소드 마스터리>, <박살 베기>, 통역(S), 모험가의 본능(C), 몬스터 도감(D)로 총 다섯 개. / 이름부터가 패시브 스킬인 <소드 마스터리>, 통역(S), 모험가의 본능(C)을 제외하면 시전해볼 스킬은 두 개. / ‘일단 별거 없어 보이는 몬스터 도감부터.’ / “몬스터 도감.” / 스르륵. / 나지막이 스킬명을 부르자 종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책 한 권. / 강운이 책을 한 장 넘기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페이지가 드러났다. / 두 장, 세 장을 넘겨도 백지인 건 마찬가지. / 당황한 강운이 책을 드르륵 넘겼으나 점 하나 찍혀있지 않았다. / 발견한 점이라면 아무리 넘겨도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점이랄까. / 강운이 일단 책을 집어넣으려 하자 몬스터 도감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내용이 백지인 건 직접 채워 넣으라는 것일까? / 그건 집에 가서 해보기로 하고, 강운은 배치된 목검을 주워들었다. / 이번에 사용할 것은 <박살 베기>. / 받은 데미지를 측정하는 목각인형에 검을 겨눈 강운은 스킬명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 팍! / [측정된 위력: 30] / “미묘한데?” / 내 측정 근력이 25니까, 위력이 30이면 주먹으로 친 거나 큰 차이 없다는 거다. / 거기에 검의 위력을 높여주는 <소드 마스터리>를 빼면... / “아니, 그냥 스킬이 안 써진 거잖아!” / 스테이터스를 켜보니 역시나. / MP:-2/1 / 마력이 고갈되다 못해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었다. / 몬스터 도감을 부를 때 상태창의 마력까지 다 썼기 때문이겠지. / 강운이 쳐다보는 심사관들을 무시하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10분을 버티자 MP가 1로 복구됐다. / 이번에야 말로 진짜. / “박살 베기!” 콰직!! / 전과는 차원이 다른 타격. / 얼마나 세게 쳤는지 강운의 손이 떨릴 정도였다. / [측정된 위력: 55] / 위력은 전의 약 2배. / 이래서 다들 마력, 스킬 하는구만? / 박살 베기가 이름값을 하는 걸 확인한 강운은 심사관에게 다가갔다. / “스킬은 전부 시험해보셨습니까? / 등급 측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심사관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 아직까지도 강운을 스카웃 해갈 마음은 없어보였다. / “네, 전부 썼습니다.” / “일주일 내에 측정된 능력치와 스킬의 위력을 바탕으로 등급이 책정되어 헌터증이 만들어질 테니, 그때까지 이걸 쓰십시오.” / 그런 그의 손엔 F급이라 적힌 임시 헌터증이 들려있었다. / 부모님의 죽음, 5년간의 고행, 괴수와의 조우, 이계.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린 강운이 감격스러운 눈으로 임시 헌터증을 받아들자, 이해한다는 듯 심사관이 웃으며 말했다. / “당신은 이제 헌터가 되었습니다.” / 그 말을 들은 강운은 눈물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 이제, 그는 헌터인 것이다. / 부모님의 복수를, 괴수를 죽이는 힘을 가진 존재. / 5화 / 집으로 돌아온 강운은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 받아온 임시 헌터증을 들어 올리자 보이는 F라는 글자. / 진짜 F급이면 괴수 사냥은커녕 짐꾼이나 해야겠지만, 초기 능력치가 높게 측정됐으니 E급은 나오겠지?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헌터가 된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 주먹을 꽉 쥐자 힘이 느껴진다. / 24라는 숫자에서 나오는, 사람의 머리통쯤은 가볍게 부숴버릴 힘이. / 그 힘을 괴수를 죽이고 사람을 구하는 데 써야 하는 것이다. / “몬스터 도감.” / 강운은 몬스터 도감을 불러냈다. / 협회에서 마저 하지 못한 실험. / 첫 번째 페이지를 펼친 강운은 펜을 들었다. / ‘동굴 고블린. 식초 냄새가 남, 회갈색 피부, 퇴화한 시력과 발달한 청각 및 후각.’ / 그러나 강운이 적은 글씨는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라졌다. / 직접 정보를 적어 넣는 게 아닌가? / 도감엔 펜이 지나갔다는 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 2번째 시도, 괴수의 그림을 그려넣기. / 3번째 시도, 괴수의 사진을 인쇄해 붙여넣기. / 4번째 시도, 피로 글자를 써보기. / 5번째 시도, 물에 넣고 끓이기(?) / 전부 실패했다. / 2번과 4번은 평범하게 사라졌고, 3번은 테이프가 붙지 않아 실패. / 5번은 마력으로 만든 물건답게 영향 자체가 없었다. / 이놈을 어찌 해야 할까. / 방구석 휴지통으로 투척한 몬스터 도감은 허공에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상태창, 스테이터스.” / [플레이어 – 이강운] / [직업] 전사(1차) / [근력] 15 / [민첩] 12 / [체력] 14 / [마력] 2 / [스킬] <소드 마스터리>, <박살 베기> / {이강운} LV.1 / HP:50/50 / MP:-2/1 / 종족: 인간 / 클래스: 모험가(용사) / 능력치- 힘: 10 / 민첩: 10 / 체력: 10 방어력: 10 / 지력: 10 / 마력: 1 / 스킬- 통역(S), 모험가의 본능(C), 몬스터 도감(D) / 업적- [구사일생] / 참고로 통역은 협회에 가기 전에 시험해봤다. / 원래부터 배우던 영어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 그리스어까지 마치 한국말처럼 들리더라. / 결국 몬스터 도감(D)을 제외하면, 남은 건 모험가의 본능(C) 뿐인데 의외로 쉽게 효과를 알 수 있었다. / 미궁 게임에서 갈림길에 도착할 때마다 옳은 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은근 사기적인 효과보다도, 게임으로 시험해볼 생각을 한 자신이 더 신기해지는 순간이었다. / 그렇지만 미궁형 균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효과가 갈림길 고르기 하나라면 조금 아쉬운 스킬이겠지만 패시브인 이상 천천히 알아 가면 될 일이다. / 거기까지 생각한 강운은 갑자기 잠이 쏟아져왔다. / 뭐, 병원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제대로 쉬지도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 헌터가 된다고 너무 긴장한 탓도 있었고. / 강운은 운동복을 벗지도 못한 채 침대에 뻗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아마 큰 소리가 나지만 않았으면 이튿날 점심때까지 숙면을 취했을 테지. /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 “윽, 뭔 소리야... / 이거....?” / 잘 자다가 깬 강운은 짜증이 났으나 곧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 <인근에 최하급, 비관측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 주민들은 신속히 근처 셸터로 대피하십시오!> / 동시에 열려진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식초 냄새. / 강운은 오늘이 그의 첫 실전이 될 것을 직감했다. / 6화 / 정신이 바짝 든 건 강운뿐만이 아니었다. / 복도와 계단은 이미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들로 가득, 강운은 창문으로 다가가 방충망까지 열어젖혔다. / 그가 사는 층은 4층. / 강운은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 쿵! / 일반인이라면 뼈가 부러질 충격이었으나, 합산 체력 24와 방어력 10을 지닌 강운에겐 조금 저릿할 뿐이다. / HP:48/50 /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강운은 균열이 열린 곳을 봉쇄하는 경찰에게 달려갔다. / 이 역시 200m가 넘는 거리였지만 10초면 충분했다. / “헌터 이강운입니다. 균열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 동시에 강운이 내민 건 임시 헌터증. / 경찰들은 무기도 없는 초짜 헌터를 보내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균열도 최하급이고, 신입 같지 않은 신체능력을 보아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 “바로 앞 사거리입니다. / 등급은 최하급, 출현 괴수는 동굴 고블린입니다.” / 무전을 받던 옆 경찰이 이어 말했다. / “중심부에는 A급 헌터 한 분이 진입했다고 합니다. / 한일아파트와 상가 라인에 방어선을 구축했으니 거기로 가 주십시오.” / A급 헌터가 왔다니, 동굴 고블린 따윈 금방 정리되겠군? / 수고의 말을 전한 강운은 아파트 방향으로 뛰었다. / 타다닥, 착! 마침내 방어선이 있다는 아파트 담장에 착지한 강운은 다른 헌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자기만한 대검을 휘둘러 괴수를 썰어버리는 전사. / 가로등을 넘나다니며 활로 목덜미를 관통하는 궁수, 괴수가 코앞까지 와도 주문을 외우다 적을 불태우는 마법사까지. / 이게 헌터들의 세계! / 그 넘치는 생동감에 강운은 깊은 흥분을 느꼈다. / 그렇지만 저 사이에 끼어드는 건 오히려 방해. / 강운은 담장에서 내려와 상가 쪽으로 향하려 했으나. / '응?' /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식초 냄새. / 뒤를 돌아보자 동굴 고블린 한 마리가 강운의 뒤통수에 짱돌을 휘두르고 있었다. / 휘익! / 고개를 틀어 간신히 피하자 뺨에 새겨지는 붉은 실선. / 백스텝으로 거리를 벌린 강운의 눈은 더없이 진지해져 있었다. / {새로운 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도감에 기록됩니다!} /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강운은 무시했다. / 지금은 적에게 집중해야 할 때. / 강운은 기억도 희미한, 어릴 적에 배운 복싱의 가드를 올렸다. / 크르르륵... / 동굴 고블린도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강운을 강자라 판단하여 거리를 벌렸다. / 그러나 강운이 올 기색이 없자 착각이라 여긴 동굴 고블린은 짱돌을 휘두르며 강운에게 돌진했다. / ‘동굴 고블린의 장점은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 / 그 말은 즉. / “보이는 이상, 맞지 않는다.” / 또다시 머리를 노려오는 동굴 고블린. / 강운은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했다. / 공격을 피하자 바로 틀어져 꽂히는 짱돌. / 뒷발을 빼놨던 강운은 이마저 여유롭게 피했다. / 강운은 다시 백스텝으로 거리를 벌렸다. / 이제 자신이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터, 그러나 가드 사이로 비친 동굴 고블린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 '웃어?' / 그 모습이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동굴 고블린과 겹쳐 보인 강운은 생각했다. / 무얼 하던, 정면에서 받아주겠다고. / 한편, 동굴 고블린의 계책은 실로 단순했다. / 허리춤에 있는 짱돌을 던진 뒤, 그걸 막느라 자세가 흔들린 강운을 다른 짱돌로 찍는 허접한 작전.... 이지만. / 아무런 방어구도 없는 강운에겐 치명적일 수 있었다. / 게다가 피할 생각 없는 강운이 자세를 더 굳히자, 동굴 고블린은 쾌재를 부르며 첫 짱돌을 집어던졌다. / 파박! 동시에 보도블럭을 박차며 뛰어드는 동굴 고블린. / 하지만 녀석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 “겨우 그거였냐?” / 바로, 가드를 올린 오른손이 손날을 펴고 있던 것. / “<박살 베기>.” / 콰직!! 칼날보다는 해머에 가까운 손날이 짱돌을 가볍게 부수고, / “키에에에에엑-!” / 뒤이어 달려오던 동굴 고블린의 가슴팍까지 찢어발겼다. / 놈은 피가 쏟아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 퍼억!!! 스텝을 밟으며, 순식간에 다가온 강운의 바디 블로우를 맞고 폐에 구멍이 뚫려 절명했다. / 이게 모험가의 본능의 효과인 걸까? / 처음으로 자신만한 동물을 죽인 강운이었지만, 괜한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 “후... 나는 동굴 고블린이랑 악연이 있나?” / 손에 흥건한 피를 턴 강운은 동굴 고블린의 시체에 다가갔다. / 몬스터 도감처럼 연기로 변해 사라져가는 시체. / 이윽고 시체는 전부 연기가 되었지만,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남았다. / 이게 바로 괴수석. / 가공하면 마력과 신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 자세하게 설명하면 길어지니 여기까지만. / “아니지, 너네 덕분에 선택도 받고, 각성도 하고, 비싼 괴수석까지 얻었으니 선연인가?" / 그때, 동료의 피 냄새를 맡았는지 동굴 고블린 다섯 마리가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 “크르르르.... 크아아!” / “방어선은 어떻게 뚫고 다섯이나 왔어?” / 아무래도 우린... 악연인가보다! / 강운은 동굴 고블린 사이로 뛰어들었다. / ‘우선 한 마리!’ / 강운은 맨 뒤에 있던 놈에게 스텝을 밟아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 설마 자신을 노릴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어이없게 정타를 내주는 동굴 고블린. / 피를 뿌리며 붕 떠오른 것이 즉사가 분명했다. / 동료들이 분노하여 손톱과 발톱, 짱돌을 마구 휘둘렀으나. / “말했지? 보이는 이상.” / 맞지 않는다고. / 합산 22라는 높은 민첩으로 공격을 전부 피한 강운은 동굴 고블린의 뒤로 돌아 훅을 갈겼다. / 퍼엉!!! / 맞은 동굴 고블린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지자, 접근을 꺼리기 시작하는 녀석들. / “키에에엑! 키이익...” / 오지 않으면 내가 갈 뿐이라고? / 타다다닥! 땅을 박차듯 스텝을 밟으며 잽. / 뻔히 보이는 동작인지라 동굴 고블린도 막아냈지만 골절을 피할 순 없었다. / 그때, 빈틈이라 생각했는지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옆구리를 노리는 동료. / 뒤로 물러나 놈에게 잽을 날리려 하자 골절됐던 녀석이 발차기를 날렸다. / 강운은 또다시 백스텝을 밟았으나 공격을 날리던 도중이라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 왼팔에 새겨지는 네 갈래 혈선. 얕지만은 않다. / 이틀 전에 이 공격을 당했다면 팔이 잘렸겠지. / 하지만 동굴 고블린들의 역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미친!” 뒤에서 간을 보던 놈이 골절된 녀석의 가랑이 사이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 강운을 날아오는 놈의 주먹. / 얼굴이나 명치에 맞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 백스텝으론 피할 수 없고, 양 옆은 다른 동굴 고블린들이 막고 있는 상황. / 강운은 해보지도 않은 백덤블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헌터의 몸이라 해도 처음 하는 동작을 완벽히 수행하긴 어려운 법. / 강운은 착지에 실패해 앞으로 넘어졌고, 졸지에 슈퍼맨 펀치에 실패해 떨어진 동굴 고블린과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 “크르르?” / 강렬한 식초 냄새. / “으악, 박살 베기!” / 강운은 손날로 놈의 머리를 찍었으나 전과 같이 터져나가진 않았다. / 마력이 부족해 스킬이 나가지 않은 것이다. / “키에에에엑!!” / 강운은 서있던 동굴 고블린들의 공격을 구르며 피했지만 몇 대 맞았는지 복부에 통증이 느껴졌다. / 재빨리 일어서서 가드를 올린 강운의 등에 닿는 차가운 감촉. / 강운은 어느새 벽까지 밀려나 있었다. / “스테이터스” / {이강운} LV.2 / HP:26/50 / MP:0/1 ··· / <박살 베기>에 필요한 마력은 2. / 상태창의 마력을 쓴다면 발동 가능했다. / 아직 HP는 절반 넘게 남았지만 전투가 어떻게 흘러갈 진 모르는 법. / 강운은 이 한방으로 놈들을 처리하겠다고 결심했다. / 7화 / 서로를 노려보는 강운과 동굴 고블린들. / 선공은 동굴 고블린이었다. / “키익!” 날아오는 짱돌. / 피하지 않고 가드를 올려 막았다. / 그러자 발차기를 날리는 골절된 놈. / 쉭! 예상하고 있었기에 잽으로 놈의 정강이를 아작냈다. / “케에에엑!!” / 그 틈을 타 하단을 노리는 동료. / 무릎을 들어 막았으나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 강운은 바로 주먹을 찍어 내렸지만, 녀석도 예상했다는 듯 피했다. / 결국 처음으로 돌아간 대치 상황. / 강운은 가드를 내리는 가 싶더니 오른손을 뻗었다. / 그러자 동굴 고블린의 시야에 나타난 검은 물체. / 그들이 던졌던 짱돌이었다. / 녀석은 가까스로 짱돌을 쳐내고 다음 공격에 대비했으나, 강운의 모습이 없었다. / “키이이익!” / 강운이 노린 건 뒤에 서있던 골절된 놈. / 강운은 놈의 허리를 잡고 옆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 갑자기 동료가 날아오자 대처를 못한 걸까? / 두 번째 동굴 고블린이 부딪히는 충격이 느껴졌다. / “케에에에엑!!!” / 놈들이 강운의 등을 쥐어뜯어도, 강운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 쿵! 마침내 벽에 부딪힌 셋. / 동굴 고블린들을 고정시킨 채, 강운은 오른손을 뒤로 뻗었다. / 그러자 모여드는 마력과 요동치는 근육. / “<박살 베기>!” / 공기를 찢으며 쏘아진 손날. / 순식간에 앞의 심장을 터뜨리고, 뒤의 허리를 갈라버렸다. / 단말마도 내지 못한 채 연기가 되는 동굴 고블린들. / 그런 스킬을 연달아 쓴 그의 손가락도 비정상적으로 꺾여있었으나, 아드레날린과 승리의 기쁨에 취한 강운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 “이... 겼다.” /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강운은 아예 드러누웠다. / 원래 강운은 이처럼 싸움을 잘하지 못했다. / 전에 말했듯 복싱도 1년 배운 게 전부고.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 바로, 모험가의 본능(C). / 추측이 맞다면 이 스킬은 ‘갈림길 찾기’, ‘전투감각 향상’, ‘침착함 유지’의 3가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거다. /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고. / 그런데 그저 본능이 이 정도라니, 이계에선 모험가가 최악의 극한직업인 걸까? / 아니면 내 상태창에 표기된 직업, 전사와 시너지가 나온 걸지도 모른다. / 거기까지 생각한 강운은 고개를 젖혀 뒤를 보았다. / 아까 손날로 머리를 내리친 동굴 고블린은 핏자국만 남았다. / 아차, 괴수석을 잊고 있었구만. / 왼손으로 바닥을 짚어 일어선 강운은 핏자국을 향해 걸어갔고, 순간 사고가 정지되었다. / 핏자국 한가운데엔, 괴수석이 남아있지 않던 것이다. / 6마리나 잡았는데 하나 없다고 문제가 되나 생각할 수 있지만, 당연히 문제가 되었다. / 모든 괴수는 죽었을 때 괴수석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 즉, 괴수석이 없다는 건. “괴수의 생존을 의미....” / 강운은 주위를 돌아보며 녀석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핏방울들. / 보도블럭이 붉은색이라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 강운은 핏방울이 떨어진 방향을 향해 뛰었다. / 여기는 방어선의 바깥 부분. 경찰에게 사살당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한 마리라도 탈출하면 대참사가 벌어졌다. / 다행히 동굴 고블린이 향한 방향은 상가 쪽. / 식초 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하자 강운은 속도를 높였다. / 골목에 들어서자 보이기 시작하는 놈의 회갈색 형체. / “찾았...” / 그러나 강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 퍼억!!! / 거대한 주먹이 강운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 각성하기 전처럼 볼품없이 튕겨나간 강운은 주먹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 {모험가 최초로, 새로운 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도감에 등록됩니다!} / C급 학살자라 불리는 중급 괴수, 블랙 오우거를. / ‘블랙 오우거가 왜 여기에?’ / 열린 비관측 균열은 최하급 균열. / 기껏해야 하급 괴수인 동굴 고블린 족장이 나온다. / 그런데 블랙 오우거라니? / 애초에 서식지가 다를뿐더러, 이런 사례는 보고된 적조차 없었다. / 쿠흐으으.... / 벽에 처박힌 강운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자, 블랙 오우거도 강운을 쳐다봤다. / 마치 세상에 자신의 적은 아무도 없다는, 포식자의 눈. / 위압감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분명 저것이리라. / “허억...!” / 강운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깔았다. / 더 이상 놈을 쳐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 그렇게 눈을 내렸지만, 절망감은 줄지 않았다. / 오히려 배가 되었다. / 자신이 죽는 순간조차 모르게 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 그것은, 블랙 오우거의 다리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검은 발들이었다. / 최하급 균열에서 블랙 오우거가 나온 게 아니었다. / 다른 중급 균열이, 블랙 오우거의 균열이 열린 것이다. / 온몸이 떨렸다. / 이성은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라 외쳤지만, 모험가의 본능조차 그게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 이걸로 끝인 걸까? / 블랙 오우거는 강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 이전에도 맛본 적 있는 절망감과, 무력감. / 하지만 강운은 그때와 달랐다. / 스테이더스를 확인할 틈도 없었지만, 동굴 고블린을 죽이고 지금까지 10분은 지났을 터. / 효과가 있을지, 애초에 맞기는 할지 모르지만. / 강운은 놈의 머리에 박살 베기를 날리고 헌터로서 죽을 생각이었다. /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이변이 일어난 것은 블랙 오우거가 세 걸음을 다가왔을 때였다. / “눈빛 좋은데? 앞으로도 그 느낌을 잊지 마.” / 파사삭! 피분수를 뿜어내는 블랙 오우거. / 놈의 주먹은 강운의 코앞까지 와 있었으나,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 척추가 잘렸기 때문이다. / “고블린들론 손맛도 안 났는데, 블랙 오우거라니 딱 좋잖아?” / “누... 구?” “나? 최강혁.” / 말을 마친 남자가 사라지듯 도약하고, 칠흑 같은 환도로 괴수의 몸통을 양단한 다음에야 강운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 균열의 중심부로 향했다던 A급 헌터가, 검귀 최강혁이었다는 것을! / 8화 / 비록 골목이긴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던 블랙 오우거들은 최강혁의 검에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 검은 환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반토막 나는 괴수들. /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마치 골목의 그림자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 검귀, 최강혁은 A급 헌터 중에서도 정점. / 곧 S급을 바라보는 그에게 중급 괴수 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 그 압도적인 위용에 평생을 포식자로 살아온 블랙 오우거들이 하나 둘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 그걸 눈 뜨고 볼 리 없는 최강혁의 뒷모습을 보며, 강운은 격통 속에 버티던 의식을 놓아줬다. / “또 만나네요?” / 눈을 떠보니, 저번에 본 그 간호사다. / 강운은 또 이 병원으로 입원된 모양이다. / 저번처럼 신속히 퇴원 수속을 밟고 돌아가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 오른손 손가락 3개 및 손목 골절, 왼쪽 갈비뼈 4개 골절. / 남들의 2배에 준하는 초기 능력치를 가지고도 이정도 부상이다. / 특히 갈비뼈는 블랙 오우거에게 한 대 맞고 이 모양. / 검귀가 와 주지 않았다면 분명 죽었다. / 그나마 다행은 내가 잡은 동굴 고블린 5마리의 괴수석이 제대로 전해졌단 것과, 정부에서 B급 힐러를 지원해줬다는 것이다. / 워낙 부상자가 많아 내 차례는 1시간 뒤지만 <리제레네이션>과 각성자 자체의 회복력이 합쳐지면 일주일 안에 완치된다고, 간호사가 전해줬다. / 현재 기준으로 남은 시간은 57분. / 일단 상태창과 스테이터스부터 확인해볼까? / “상태창.” / [플레이어 – 이강운] / [직업] 전사(1차) / [근력] 15->16 [민첩] / 12->14 / [체력] 14->16 / [마력] 2->3 / [스킬] <소드 마스터리>, <박살 베기> / 4대 능력치가 고루 올랐다. / 그래봤자 마력은 쥐꼬리만 했지만. / ‘스테이터스’ / {이강운} LV.3 / HP:50/50 / MP:1/1 / 종족: 인간 / 클래스: 모험가(용사) / 능력치- 미분배 / 능력치: 5 / 힘: 10 / 민첩: 10 / 체력: 10 방어력: 10 / 지력: 10 / 마력: 1 / 스킬- 통역(S), / 모험가의 본능(C), / 몬스터 도감(D) 업적-N! [구사일생], [초급 몬스터 발견자] / 스테이터스는 변화가 꽤 있었다. / 능력치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새로 나타난 ‘미분배 능력치: 5’. 설마 설마하며 마력에 1을 분배한다고 생각하자. / 미분배 능력치: 5->4 마력: 1->2 진짜로 올랐다. / 아무래도 스테이터스는 원하는 능력치만 올릴 수 있는 듯 하다. / 그래선지 전체 상승량은 상태창보다 적지만 마력고자인 나에겐 엄청난 어드벤티지다. / 미분배 능력치: 4->0 마력: 2->6 이걸로 마력 걱정은 끝! / 성급한 선택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신체로도 최하급 괴수는 문제 없음. / 마력을 올려 <박살 베기>만 연속으로 쓰면 하급 괴수까지 죽일 수 있을 것이다. / 물론, 검을 든 상태에서 말이다. / ‘친구한테 빌리는 건.... 좀 그렇고. / 목검을 10개쯤 가지고 가볼까?’ / 그 꼴을 균열을 통제하는 군인들이 들여보내줄지 모르겠지만, 다음은 업적 확인이다. / 내가 지닌 업적은 [구사일생]과 [초급 몬스터 발견자]. / 업적에 대한 설명이 없어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작은 창 하나가 떠올랐다. / [구사일생] {죽음 직전에서 살아남은 용사에게 주어지는 업적. 또다시 죽을 위기가 닥쳐올 때,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높아진다.} / 죽기 직전에 살아남았다는 건 공원에서 동굴 고블린에게 당한 일을 뜻하는 것 같다. / 혹시 저 업적 때문에 검귀가 나타났던 것일까? / 왠지 타향 출신 스테이터스가 우리 상태창보다 날 더 챙겨주는 것 같다. / 다음 업적도 바로 확인! / [초급 몬스터 발견자] {어떤 모험가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몬스터를 발견한 용사에게 주어지는 업적.} / 이번 건 효과가 없었다. / 그런데 ‘새로운 몬스터’라? / 몬스터는 괴수일 건데. / 내가 만난 괴수는 동굴 고블린과 블랙 오우거 뿐, 전부 세간에 알려진 괴수였다. / ‘생각해보니까, 걔네 처음 만날 때 뭐 뜨지 않았나?’ / 새로운 어쩌구. / 도감이 저쩌구였는데. / 그러고 보니 블랙 오우거를 처음 봤을 땐, 앞에 뭐가 더 있던 것 같다. / ‘몬스터 도감을 불러보면 알겠지.’ 몬스터 도감. / 마음속으로 외쳤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몬스터 도감, 몬스터 도감! / 하, 직접 말해야만 나오나보다. / 상태창의 스킬은 요령만 생기면 말 없이도 발동이 된다던데. / “몬스터 도감.” / 스르륵- 역시나, 첫 번째 페이지에 무언가 적혀있었다. / 알 수 없는 문자였지만 통역(S)의 힘으로 번역하자면 이렇다. / 1. 등록한 몬스터에 따라 추가 능력치 제공. / (일반 등록은 5마리 당, 최초 등록은 1마리 당 제공.) / 괴수를 등록했기 때문에 활성화가 된 것일까? / 전에는 보지 못한 글씨였다. /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으니까. / 그리고 능력 2와 능력 3도 곧 생기길 빌며 넘긴 다음 장에도 모르는 문자가 적혀있었다. / 이것도 번역하면… / -리앙켈린 북부 동굴 고블린- / 최초 발견자: 레길리우스 / 시각 대신 청각과 후각이 발달했으며 시큼한 체취가 난다. 이걸로 끝. / 한 장을 더 넘기자 익숙한 이름이 나타났다. / -블랙 오우거- / 최초 발견자: 이강운 / 이걸로 알 것 같았다. / 도감에서 말하는 최초는 이계의 모험가들 중 최초라는 것을. / LV가 2 올랐는데 미분배 능력치는 5가 주어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도감이라더니 괴수명과 최초 발견자 이름만 적히는게 전부인가? / 업적 때처럼 뚫어져라 쳐다보면 새 창이 나올까 싶어 도감을 양손으로 잡아든 순간. / “으윽!” 마력과 머릿속의 지식이 도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동시에 채워지는 블랙 오우거의 페이지. / -블랙 오우거- / 최초 발견자: 이강운 /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3m가 넘는 거대한 몸집을 지녔지만 기척을 숨기는 것도 탁월하다. / ··· {마력을 소모하여 개체-블랙 오우거에 대한 정보를 일정 이상 입력했습니다. / 미분배 능력치가 1 주어집니다.} / {마력을 소모하여 개체-블랙 오우거에 대한 정보를 일정 이상 입력했습니다. 미분배 능력치가 1 주어집니다.} / {마력을 소모하여 개체-블랙 오우거에 대한 정보를 일정 이상 입력했습니다. 미분배 능력치가 1 주어집니다.} / {마력이 부족합니다.} / {마력이 부족합니다.} / ··· 헉, 헉. 미분배 능력치라고? 강운은 스테이터스를 불러내 바로 확인했다. / / {이강운} / ··· MP:-2/6 ··· / 능력치- 미분배 능력치: 3 ··· /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강운은 몬스터 도감을 역소환했다. / 바로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도감. / 강운은 도감을 들고 있던 두 손을 꽉 쥐었다. / 방금 전이라면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스킬로 <박살 베기>와 모험가의 본능(C)를 뽑았겠지만 도감의 활용 방법을 터득한 이상. / “몬스터 도감, 이거야말로 사기 스킬이다.” / 적어도, 5년 넘게 괴수학을 공부한 강운에게는 말이다.
작품 정보
〈불편한 소설 읽기 챌린지 [어쩌다보니 상태창이 2개네? 능력치도 2배, 스킬도 2배, 성장력은 그 이상?]〉은 0101001 작가의 판타지 웹소설이다.
노벨피아에서 연재 중이다.
연재 시작은 노벨피아 2021년 7월 26일이다.2026년 10월 18일 기준 연재 회차는 노벨피아 5화다.